조각은 ‘덩어리’다. 회화와 달리 공간을 차지하고 나누고 품는다. 현대 조각가는 조각을 만들면서 그를 둘러싼 공간까지 재창조하는 셈이다.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이달 4일부터 내달 28일까지 나란히 열리는 이우환(87)과 알렉산더 칼더(1898~1976) 개인전은 두 거장이 만들어낸 조각과 공간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좋은 기회다.
먼저 이번 개인전 ‘Lee Ufan(이우환)’에서는 국제갤러리 K1관, K2관 2층과 정원에서 1981년부터 올해까지 제작된 조각 6점과 드로잉 4점을 선보인다. 조각들은 이우환이 1968년 첫 작품을 제작한 이후 현재까지 제작해온 ‘관계항’ 연작이다. 이 가운데 1관에 설치된 ‘관계항 – 키스’는 올해 처음 공개한 신작. 돌 두 개를 맞대고 그 돌들을 각각 둘러싼 쇠사슬을 서로 포갠 작품이다. K2관 2층에는 1996년 제작한 작품을 올해 다시 제작한 ‘관계항 – 사운드 실린더’가 놓여있다. 강철로 만든 커다란 원통에 돌을 기대어 놓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작은 구멍이 5개 뚫려 있는데 새들부터 에밀레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리가 낮게 흘러나온다. 두 작품 모두 어둡고 넓은 방안에 설치돼 있어 반향이 깊다.
이우환이 만들어낸 공간은 명상적이다. 그가 꾸준히 활용한 소재인 돌과 강철판은 각각 자연과 산업사회를 상징한다. 이들은 관계를 맺고 침묵의 대화를 나눈다. 관람객도 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이우환은 돌과 강철판의 관계를 이미 설명한 적이 있다. “돌은 시간의 덩어리다. 지구보다 오래된 것이다. 돌에서 추출된 것이 철판이다. 그러니까 돌과 철판은 서로 형제 관계인 것이다. 돌과 철판의 만남, 문명과 자연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 내 작품의 발상이다.”
K2관 1층과 K3관에서는 알렉산더 칼더의 개인전 ‘CALDER(칼더)’가 열리고 있다. K3관에는 노란색, 빨간색, 검은색 등 색색으로 칠한 얇은 철판들이 가느다란 철사에 매달려 서서히 흔들리고 있다. 칼더가 창시한 것으로 유명한 ‘움직이는 조각(모빌)’들이다. K3 안쪽 공간의 천장을 채운 '구아바(Guava·1955년)'는 가로 길이가 3m를 훌쩍 넘는다. K2관에는 칼더의 조각 1점과 함께 그림 15점이 전시됐다.
칼더의 공간은 화려하다. 모빌들은 허공에 걸린 채, 공기의 미세한 흐름에 따라서 서서히 움직인다. 관람객들이 전시실의 문을 여닫으면서 생기는 미세한 바람에도 조각은 흔들린다. 강렬한 색을 원형, 나선형으로 그려넣은 그림들에서도 동세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운동감이 가득한 공간이다. 국제갤러리 홈페이지 등을 통해서 사전에 예약한 사람만 관람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