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 <4> 격차해소 위한 제도개선-1
"배 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 노동시장은 특히나 그렇다. 나쁜 근로조건보다 차별이 주는 상실감이 더 고통스럽다. 남들보다 더 노력하고 수고했다면 보상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부러울지언정, 이런 걸 두고 배 아프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 더 분발하게 된다. 차이가 '차별'이나 '과도한 격차'로 변질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과거에는 성별이나 인종에 따른 차별이 골칫거리였다. 지금은 격차 문제가 사회적 갈등이라는 측면에서 차별 못지않게 고약하다. 기업 성과 차이가 곧 노동시장 내부의 과도한 격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약한 비정규직 또는 하청 근로자에게 부담과 손해를 고스란히 떠넘기는 방식이 문제다. 그로 인한 격차는 '과도'할 뿐만 아니라 '불공정'한 것이다.
노동시장에서의 '공정'이 경제학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불공정한 노동시장에서 신명 나게 일할 근로자는 아무도 없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집계한 2021년 기준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OECD 37개국 중 29위에 불과했다. 독일의 62.8%, 미국의 57.4%에 그쳤다. 이런 결과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는 정부 출범 때마다 국정과제의 단골메뉴였다. 그러나 딱히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둔 거 같지는 않다. 노동시장 진입을 주저하는 청년들이 여전히 많고, 깊은 좌절감 속에서 오기로 일하는 기성세대들도 예전 그대로다. "자식만큼은 좋은 대학 보내서 꼭 대기업 취직시켜야겠다"는 하소연이 저절로 나올 판이다. 그렇다고 "자본의 이익을 쟁취해 내서 이중구조를 해결해 내야 한다" 식의 철 지난 이데올로기적 계급론도 해법이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해법은 원인을 찾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게다가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기득권자의 양보도 이끌어내야 한다. 단숨에 해결해 낼 신묘한 비책이란 게 있을 리 만무하다. 늦더라도 차례로 하나씩 실마리를 풀어가야 한다.
첫 번째 실마리는 산업별 노동가치 평가기준 마련에서 찾아야 할 듯싶다. 우리나라에는 특정 산업 또는 사업장 구성원들이 스스로 작업환경과 난이도 등을 고려하여 마련해 둔 표준적 직무가치 평가기준이 아직 없다. 산별단체협약이 그 역할을 하는 독일에 비해 우리는 그만큼 차별과 격차에 취약한 셈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나서서 원하청 노사 모두가 상호 긴밀히 소통을 할 수 있는 판부터 깔아줄 필요가 있다. 지속적인 모니터링도 필요하다. 자칫하면 허울만 좋은 소통체제로 전락할 수도 있고, 소통은커녕 대립과 갈등의 빌미만 될 위험도 있어서다. 마침 지난 2월 조선업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상생협약이 있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을 게 틀림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다. 사뭇 기대가 크다.
사족을 하나 덧붙인다. 노동의 가치를 평가함에 있어 시장가치와 생산성에만 의존하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노동의 가치는 전문성과 창의성으로 판가름 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에 내포된 사회적 가치를 함부로 과소평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인데 정작 누구 하나 하기를 꺼리는 일들이 많다. 위험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지저분해서 그럴 수도 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그 막연한 공포감에 힘들어할 때 과감히 용기를 내어 준 근로자들이 있었음을 분명히 기억한다. 고마웠다는 말보다는 노동의 사회적 가치가 합리적으로 반영된 보상시스템이 작동했더라면 좋았겠다 싶었다.
기업에서는 유해하고 위험한 업무가 비정규직, 하청근로자의 몫이 된 지 오래다. 대기업 정규직 노사가 악착같이 근로조건 향상에 매달리면서도, 정작 비정규직이나 하청근로자들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하는 것은 아닌지도 꼼꼼히 되짚어 볼 일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의 목적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누구나 일할 맛이 나게 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노동생산성도 오르고, 경제성장도 지속가능하게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