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 사망'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 벌금형 확정

입력
2023.04.13 11:30
1심 "현장 지휘관에 권한 위임" 무죄 판단
2심 "부상자 발생 예상 가능" 벌금형 선고
"위법·과잉 진압 때 최종 지휘권자 책임 인정"

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사망한 고(故) 백남기 농민 사건과 관련해 구은수(65) 전 서울경찰청장이 유죄를 확정 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13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구 전 청장에게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백씨는 2015년 11월 14일 서울 도심에서 진행된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 살수차가 직사한 물대포를 맞아 두개골 골절 등으로 쓰러진 뒤 이듬해 9월 숨졌다. 구 전 청장은 당시 경찰 책임자로서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구 전 청장이 당시 지휘 권한을 현장 지휘관에게 위임해 구체적인 시위 상황을 알기 어려웠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사건 당시 상황센터 내 구 전 청장 자리와 화면까지 거리, 화면 크기, 무전 내용 등을 고려하면 당시 서울 종로 입구에서 일어난 살수의 구체적 상황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심은 구 전 청장이 부상자 발생을 예상할 수 있었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서울경찰청 상황센터 내부 구조나 기능, 무전을 통해 실시간 현장 상황을 파악할 체계가 구축된 점을 종합하면 당시 현장 지휘관이 지휘·감독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며 "구 전 청장은 보고를 받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적절히 지휘권을 행사해 과잉 살수가 방치되지 않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 "집회·시위 현장에서 불법·폭력행위를 한 시위 참가자가 민·형사상 책임을 지듯이, 경찰이 쓴 수단이 적절한 수준을 초과한다면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짚었다.

대법원은 2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경찰의 위법·과잉 시위진압에 관해 최종 지휘권자의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는 경우 직접 시위 진압에 관여한 경찰관들과 함께 형사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는 선례를 제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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