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으로 불린 유자광을 위한 변명

입력
2023.04.13 16:00
14면
서얼 출신이란 멍에 안고 정계서 활약한 승부사
신간 '유자광, 조선의 영원한 이방인'

조선시대 초기의 문신이자 무관이던 유자광(1439~1512)은 대표적인 간신으로 꼽혀온 인물이다. 그러나 막상 사료를 톺아보면 그가 오히려 역모 고발을 서슴지 않는 승부사였다는 평이 많다. 그를 둘러싼 허위 정보를 정정하는 작업이 오늘날에야 두 사학과 교수에 의해 이뤄졌다.

서얼 차별이 본격화되던 15세기 후반, 유자광은 천민 출신 첩의 아들로 태어났다. 탁월한 문장 실력을 갖춘데다 각종 무예까지 능했음에도, 그는 출생 배경 하나 때문에 중앙 정계 진출을 시도할 때마다 번번이 시련을 겪었다. 세조 13년에 터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해 세조의 총애를 받고도 양반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요직 발령에 앞서 대간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얼자 출신이라 과거시험을 볼 수 없어 세조에게 상소를 올리고서야 시험에 응할 수 있었고, 장원급 답안을 써내고도 양반들의 견제로 낙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유자광은 꿋꿋이 왕의 충신으로 살고자 했다. 예종 즉위년에 예종이 아니라 덕종의 아들이 왕위를 잇게 해야 한다고 말한 무인 남이의 반역을 곧바로 고발해 극형에 처하게 했다. 성종 즉위 이후, 성종이 직접 정사를 맡는 걸 반대하던 당대 최고의 정치가 한명회를 탄핵시킨 것도 그였다.

물론 그의 충신으로서의 행보는 지극히 권력 지향적이라서 완전무결했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정치 인생 내내 양반 출신 기득권 대간들의 텃세에 정면 돌파해온 그를 간신이라고만 깎아내리는 건 적절한가. 저자에 따르면, 유자광이 갑자사화의 주동자였다는 등 그를 만악의 근본으로 지목하던 세간의 평은 사실이 아니었다. 저자들은 적는다. “적자·양반·문신들의 조선왕조에서 유자광은 어찌 해볼 수 없는 영원한 이방인이었다”.


최은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