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A경찰서의 B형사는 이전에 없던 경험을 했다. 마약 신고가 들어왔는데, 신고자는 엄마였고 대상자는 신고자의 14세 중학생 딸이었다. 중학생 딸은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가상화폐로 필로폰을 집으로 배달시킨 뒤 투약한 혐의다. 딸은 마약에 취해 집에서 쓰러져 발견됐다. 여중생은 호기심에 마약을 투약했다고 진술했으나, 경찰은 이전에도 마약을 투약한 적이 있는지 확인 중이다.
한국 사회가 마약으로 물들어 가면서,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청소년들이 가장 큰 타깃으로 떠오르고 있다. 청소년 마약 예방 대책이 시급히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교도소 격리 위주의 마약사범 대책도 제대로 된 갱생을 위한 치료공동체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검거된 마약류 사범은 1만8,395명. 그러나 전문가들의 분석은 충격적이다. 당국에 붙잡힌 이들 밑에 숨어 있는 비율이 100배에 이른다는 추정이다. 즉 100만 명 이상이 마약에 중독된 상태일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우려되는 점은 청소년 마약사범의 가파른 증가다. 전체 마약사범이 5년전보다 1.46배 증가한 반면, 청소년 마약사범은 3배 이상 증가했다. 대검찰청 통계에 의하면 19세 이하의 마약 사범의 경우 2018년 143명에서 지난해 481명으로 336.3%나 급증했다.
B형사 사례가 말해 주듯 10대 청소년을 중심으로 하는 마약류의 급속한 보급은 21세기 마약유통에 20세기 방식으로 대응해서 빚어진 결과다. 인터넷 사용 보편화, 해외여행 및 유학 증가, 인기 연예인들의 마약 적발 등으로 청소년에 대한 유혹이 높아지고 은밀하게 구입하는 방법이 늘어나는데도 어른들이 손 놓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은 바뀌었는데 마약 대책은 20세기에 머물면서 마약 청정국 지위를 잃게 됐다는 얘기다. 다시 청정국 지위를 되찾고, 우리 아이들을 지키려면 어떤 대응이 필요할까.
21세기에 맞는 마약중독 예방과 마약사범의 회복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마약사범에 대한 △낙인 지우기 △치료공동체(Therapeutic Community)의 확산 △컨트롤타워의 구축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의 확립이다. 이 가운데서도 정부주도의 사회 내 ‘치료공동체’(Therapeutic Community)와 청소년에 대상 프로그램의 확립은 새 대응의 핵심이다.
치료공동체란 말 그대로 중독자들의 회복과 사회복귀를 돕는 입소형 시설이다. 이 안에서 사회기술 향상, 자존감 증진, 조절력 증진, 가족교육 및 상담 등을 다루는 치료 프로그램과 직업훈련 등이 제공된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에서는 1960년대 초부터 널리 보급·운영되어 왔으며, 여러 연구를 통해 중독 증상의 완화와 전반적 정신건강 증진과 사회적 기능 회복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치료공동체를 거친 회복자들은 그렇지 않은 회복자들에 비해 재발률이 낮은 것은 물론, 치료공동체에서 6개월 이상 수료한 경우 정상활동으로 복귀하는 비율이 6개월 미만의 수료자보다 월등히 높다.
치료공동체의 필요성이 높아진 건 마약 중독은 재발이 흔할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삶의 태도 및 방식과 관계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격리와 병원에서의 치료만으로는 갱생에 필요한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 병원 치료와 연계할 수 있는 유용한 개입 전략이 필요한데, 치료공동체가 그 방법이다. 미국의 경우 교도소 내 치료공동체 프로그램을 통해 수감자들의 출소 후 재범률과 재발률을 낮추고 있다. 치료공동체를 교도소 내에서 확대할 뿐 아니라 사회 내에서 정부주도의 치료공동체를 설립하여 마약대책의 일환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특히 지역사회의 치료공동체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중독자와 회복을 원하는 단순투약자에게 도움을 주는 전진기지가 될 것이다. 중독의 굴레를 이미 성공적으로 회복한 경험자들이 상담자 역할을 맡아 다른 이들의 회복을 도울 수 있다. 회복자들은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의 어려움에 잘 공감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회복 사례로서 중독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청소년 맞춤 대응도 마련되어야 하는데, 대응의 핵심은 부모다. 학교와 가정, 사회에서 동시에 청소년 보호를 위한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 마약의 특성이나 위험성을 청소년에게 제대로 알리는 내용 외에도 의사소통 기술 향상, 자기조절력 증진, 건강한 생활습관 형성 등이 프로그램에 포함돼야 한다. 우울이나 외로움 등의 부정적 정서나 스트레스, 낮은 자존감 등은 마약에 빠져드는 잠재적 위험요인이 되는 만큼 이에 대한 개입도 병행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가 단위에서 마약예방 및 단속, 갱생을 총괄적으로 조율하는 ‘중독 컨트롤타워 구축’이 필요하다. 국내 마약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는 이를 책임지고 관리할 명확한 중심 기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중심축 역할을 하는 기관의 모범 사례로는 미국의 SAMHSA(Substance Abuse and Mental Health Services Administration)와 호주의 NDS(National Drug Strategy)가 있다. 이들 기관은 모두 정부에 의해 운영되며, 마약류 중독과 관련한 정책과 프로그램, 예산 지원 등을 총괄한다. 중독 문제의 대응 및 관리가 일관된 기조로 체계화되어 시행되게끔 지원하고 있다. 마약 대응 컨트롤타워의 존재는 관련 기관 간의 협력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예방과 치료, 회복지원 프로그램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다. 정부 차원에서 중독 문제 전반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고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확보한다면 마약중독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이 가능해질 것이다.
박상규 가톨릭꽃동네대학교 상담심리학과 명예교수·박상규심리상담연구소 대표
영남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계명대에서 임상 및 상담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중독심리학회와 한국중독상담학회 회장, 국무조정실 마약류대책 민간위원, 경찰청 마약류범죄수사 자문위원, 세종충북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녹조근조훈장, 대통령상(2회)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