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그룹의 수소 기술 분야를 총괄하는 위르겐 굴트너 박사는 최근 한국 취재진을 만나 첫 수소연료전지차 'iX5' 파일럿 모델을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 테슬라와 중국 비야디(BYD) 등 전기차 제조 업체는 물론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생태계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차분히 수소차 개발에 나선 배경을 설명한 것이다. 그는 "미래 시장에서 수소차가 차지하는 비중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BMW는) 10~15년 뒤를 보고 있다"고 했다. 친환경차 '투 트랙' 전략을 공언한 셈이다.
16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수소차 개발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넥쏘(NEXO)'를 앞세운 현대차의 나 홀로 질주에 경쟁자들이 생기고 있다. 친환경차 시장의 무게 중심이 전기차 쪽으로 쏠린 상황에서 ①배터리가 무겁고 ②충전(연료주입) 시간이 상대적으로 긴 데다 ③온도에 따른 주행거리 차이가 크고 ④1회 충전 시 주행거리 또한 고민거리인 전기차의 단점을 메워줄 수 있는 보완재로 수소차를 다시 챙기기 시작한 것. 더 나아가 '전기차 시대 이후'의 주도권 경쟁에도 대비하겠다는 셈법 또한 녹아 있다.
①수소차를 만들다 말았던 혼다는 지난해 말 미국에서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CR-V를 바탕으로 한 수소차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고 ②푸조와 지프, 시트로앵 등을 품고 있는 스텔란티스그룹은 현대차 투싼 iX와 넥쏘를 개발한 수소차 전문가 안병기 전 현대모비스 전무를 지난해 영입해 수소차 개발 확대 가능성을 열었다. ③도요타 역시 올해 들어 '전기차 퍼스트'를 선언하면서도 수소차 투자는 유지하겠다고 했다.
정부 주도로 전기차 생산력을 빠르게 끌어올린 중국 업체들도 수소차 시장 진입 의지를 일찌감치 드러낸 상태다. ④상하이자동차 하위브랜드 맥서스는 수소차 유니크 7(EUNIQ 7)을 내놓는 등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SNE리서치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짧은 시간에 내수 시장을 세계 최대 규모로 만들었다"며 "수소 산업을 키우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또다시 매섭게 추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정부는 "2030년까지 수소차 100만 대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처럼 수소차 개발 또한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될 것으로 보면서도 충전 등 인프라 구축이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수소차가 인프라 구축에 어려움이 있지만 신재생에너지 활용 측면에서 중요한 대안"이라며 "인프라 구축 문제 해결이 열쇠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굴트너 박사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 부지에 수소 주입 인프라를 추가하는 방법이 대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수소차 선도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도 연료주입 인프라 문제는 큰 숙제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수소차 연료주입시설은 고압가스시설로 분류돼 학교, 공동주택, 의료시설 등과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야 하는 데다 주민 반발도 커 부지 선정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현대차는 2040년까지 수소에너지가 '누구나, 모든 것에, 어디에서나' 쓰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수소비전 2040'을 내놓았는데 글로벌 기업들의 추격을 따돌리기에 앞서 안방에서 정책적 장벽을 넘어야 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가 2030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통해 수소차 보급을 2030년까지 30만 대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힌 만큼 정책적 지원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유럽에서는 셀프 주유처럼 수소 주입을 소비자가 스스로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며 "수소경제 구축 포부에 비해 규제가 너무 많은 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대차 역시 초격차를 내기 위해선 차세대 스택(수소연료 전지 시스템) 개발과 넥쏘 후속 모델 개발 등에 힘을 더 쏟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