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0년 전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포함한 중동지역의 민주주의 회복을 내세웠지만, 중동 국가 국민 가운데 그에 동의하는 비율은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중동지역 국가의 자결권을 존중하고 있느냐는 응답도 동의하는 비율이 평균 10% 내외에 머물렀다. 특히 이 지역 유일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이자, 미국 동맹인 튀르키예에서 미국이 자국의 자결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응답 비율이 높았다. 중동지역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최근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12일 여론조사업체 갤럽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 20주년을 전후해 중동지역 15개국의 미국 대외정책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미국이 중동국가의 민주주의 실현에 진심을 다하고 있다'는 물음에 소수의 응답자만 동의했다. 후세인 정권이 축출되고 외형적으로 민주주의 체제를 갖춘 이라크도 응답자의 26%만이 '미국이 민주주의에 기여했다'고 인정했다. 72%의 응답자는 미국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만 후세인의 침공에서 자신들을 미국이 해방시켜준 쿠웨이트 국민들은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긍정 비율(33%)이 다른 국가 대비 상대적으로 높았다.
미국이 중동 국가의 자결권을 침해한다는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았다. 튀르키예 응답자의 78%가 '미국이 중동 국가의 자체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란과 튀니지, 팔레스타인 응답자들의 부정적 응답 비율도 70%를 넘어섰다. 상대적으로 친미 성향이 강한 쿠웨이트에서는 긍정 비율이 30%를 기록했다.
미국이 중동지역 주민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비율도 소수에 그쳤다. 특히 미국의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에서는 이 부분에서 반미 정서가 극도로 높았다. '미국이 중동 주민의 경제적 삶 개선에 신경 쓰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란 응답자의 8%만이 '동의한다'고 밝혔다. 튀르키예와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동의한다는 비율이 12~14%에 머물렀다. 반면 모로코, 요르단, 쿠웨이트에서는 경제발전에서 미국의 역할을 긍정하는 비율이 다른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이번 조사와 관련, 갤럽은 미국의 이라크 해방작전이 결과적으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갤럽은 "중동지역의 민주화와 민생 개선에 대한 미국의 약속과 달리, 이라크와 무슬림이 다수인 중동 12개국에서는 미국 역할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여론이 매우 소수에 머물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