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 말해요' 속 이성경은 화장기 없고 무심한 차림새로 등장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로운 연기를 펼쳤다. 여기에는 감독의 신뢰와 동료의 배려, 그리고 인물에 대한 깊은 몰입이 시너지를 발휘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이성경은 본지와 만나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사랑이라 말해요'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랑이라 말해요'는 만나지 말아야 할 두 사람, 동진과 우주가 만나 복수와 미움, 연민과 사랑을 말하는 로맨스 시리즈다.
이날 이성경은 작품을 떠나보내는 소감으로 "안 끝났으면 좋겠다. 너무 아쉽고 여운이 길게 간다. 끝나는 것이 싫다"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유독 '사랑이라 말해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낸 이성경은 공개 전까지 많은 우려를 가졌다고 밝혔다. 먼저 '사랑이라 말해요'의 공개 시점은 장르물의 흥행 속에서 로맨스와 멜로가 다소 대중의 관심을 못 받던 시기였다. 거기에 빠른 호흡을 선호하는 시청자들의 트렌드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다이내믹한 전개들이 큰 사랑을 받는 가운데 '사랑이라 말해요'는 루즈한 속도로 인물들의 서사를 켜켜이 쌓아간다. 분명 비주류의 장르에 속하지만 '사랑이라 말해요'는 작품 고유의 템포를 유지하면서 스스로의 강점을 만들었다. 이성경은 시청자들이 '사랑이라 말해요'의 느리지만 진한 여운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던 것이다. 그는 "저희 만의 호흡을 따라가야 몰입이 가능하다. 시청자들이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염려를 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호흡을 잘 즐겨주셔서 안도했고 기뻤다"고 말했다.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 '역도요정 김복순' '별똥별' 등 주로 밝은 이미지를 소화했던 이성경이 특유의 텐션과 에너지를 내려놓고 새로운 얼굴을 선보였다. 이성경이 우주라는 캐릭터에 대한 연구를 가벼운 마음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감정이 짙게 배어 나온다. 그가 이번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대본의 힘이다. "대본을 텍스트로 봤을 땐 날이 서 있어요. 하지만 제가 잘 연기하고, 또 섬세하게 잘 담아주시는 감독님과 호흡하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세련된 작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극중 우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전작들의 누적된 경험으로 인해 밸런스를 더욱 조심스럽게 잡아가야 했다. 이성경은 인물의 우울감을 과도하게 표현하지 않기 위해 고민, 또 고민했다. 복수로 움직이는 우주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늘상 우울함에 젖어있지 않다는 점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사랑관도 들을 수 있었다. 이성경은 "사랑이라는 것은 무채색을 컬러풀하게 만들고 생기 없는 것에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사랑의 힘이 사람에게 얼마나 미치는지 알게 됐다. 우리 작품은 제목처럼 입으로 말하진 않지만 모든 행동들이 사랑을 말한다. 원래도 큰 의미가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크다는 걸 작품을 통해 더 정의가 내려지고 더 새겨졌다"고 설명했다.
이성경은 전작을 끝내고 '사랑이라 말해요' 작업에 바로 들어가야 했기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촬영장에서 연기하는 것만큼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단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대로 가만히 있었어요. 우주를 연기하면서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았어요. 자유롭고 편한 순간이라고 느꼈죠.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스태프들 덕분입니다."
이광영 감독은 이성경의 우주를 충분히 존중했다. 감독의 무한한 신뢰 속에서 이성경은 우주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 그 스스로 우주가 됐다. 그는 "배우로서 캐릭터로 보여져야 한다.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다. 제가 만약 화려하고 꾸민 모습으로 나왔다면 작품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진중한 연기관을 드러냈다. 화장기 없이 초췌한 얼굴이지만 부담감은 없었다. 이성경은 "배우는 캐릭터를 잘 해냈을 때 가장 예쁘다. 캐릭터로 보여지는 것이 제 꿈이다. 이성경에 대한 피드백이 아닌 캐릭터로 보여지는 것이 꿈"이라고 강조했다.
함께 호흡한 김영광에 대해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영광을 두고 "생각보다 더 많이 고민하는 배우"라고 표현한 이성경은 "쉽게 해낼 것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보면서 반성도 자극도 됐다.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화를 많이 했다. 잘 챙기는 사람이다. 본인 것도 참 버거울 텐데 섬세한 파트너"라면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실제로 절친한 사이인 두 사람을 두고 이광영 감독은 '사귀는 것 아니냐'는 애정 어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이처럼 감독의 존중과 상대 연기자의 배려 덕분에 이성경은 캐릭터에 더욱 깊게 몰입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이라 말해요'와 우주를 떠올리는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부족함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성경은 "인물의 감정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캐릭터 성향, 톤 등이 많은 분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부족하고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작품을 또 하고 싶다"고 의지를 피력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 느낀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손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겁니다. 저는 내일이 올지 모르는 지금을 살고 있으니 순간순간에 감사하면서 살고 싶어요. 저 역시 연약하기 때문에 넘어지기도 해요. 삶의 기준과 방향이 흔들릴 때마다 바로 잡고 제대로 설정하고 걸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