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5월 존 F. 케네디의 의회 연설로 공식화된 미항공우주국(NASA) 유인 달 탐사 계획(Project Apollo)의 궁극적 목표는 달도 달이지만, 유리 가가린에게 집중된 스포트라이트를 빼앗아 오는 거였다.
시작은 불안했다. 1967년 1월 지상훈련 중 첫 탐사선 아폴로 1호가 배선 불량으로 전소돼 버질 그리섬(Virgil Grissom) 등 우주비행사 3명이 숨졌다. 하지만 이후 3차례 무인 비행과 달-지구 유인 궤도비행은 잇따라 성공했고, 그다음이 1969년 7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었다.
인류가 여전히 아폴로 11호의 달 영상에 사로잡혀 있던 1969년 11월, 아폴로 12호 우주인들도 지켜봐 주는 이 없는 달 표면에서 무려 31시간을 보낸 뒤 귀환했다. 인류는 지구-달 왕복노선의 안정화를 기대했다.
1970년 4월 11일, 짐 러벨(Jim Lovell) 등 3명이 탄 세 번째 달 착륙선 아폴로 13호가 달 표면 ‘프라 마우 고원’ 분지 지질학 실험 임무를 맡아 출발했다. 13호는 지휘 모듈 ‘오디세이’와 착륙 모듈 ‘아쿠아리우스’를 터널로 연결한 구조였다.
문제가 생긴 건 13일 저녁, 우주선이 32만km를 순항해 달 궤도에 6만여km가량 근접한 무렵이었다. 배선 스파크로 인해 가압 산소탱크가 폭발하면서 우주선 내 산소와 전기, 물 공급이 중단되는 중대사고. 그들의 임무는 달 착륙이 아니라 무사 귀환으로 전환됐다. 텍사스 휴스턴 지상관제센터는 선체에 남아 있던 장비들로 선내 이산화탄소 제거와 동력 유지 등을 위한 비상조치를 강구해 지시했고, 승무원들은 우주 미아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물과 산소를 아껴 쓰며 까다로운 임무들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그렇게 만 사흘을 버틴 아폴로 13호 우주인들은 4월 17일 낮 1시 지구(태평양)로 무사 귀환했다. 우주 개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실패”가 그렇게 완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