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첫 우주인의 비행 이후

입력
2023.04.12 04:30
26면
4.12 유리 가가린

1961년 4월 12일 오전 9시 7분, 구소련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Yuri Gagarin)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대기권 너머 지구 궤도를 돈 뒤 무사 귀환했다. 바이코누르(Baikonur) 우주기지를 떠난 지 108분. 그 잠깐의 시간, 빼꼼 열린 우주의 베일이 미소 냉전기 우주 레이스의 거대한 트랙이 됐고 인류에게 우주는 꿈의 공간에서 현실적 기대와 개척의 공간이 됐다.

지구의 첫 목격자였던 가가린의 운명도 보스토크의 비행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요동쳤다. 스몰렌스크 그자츠크 시골 클루시노 출신 만 27세 무명 공군전투기 조종사였던 그는 저 108분 직후 일약 2계급을 특진해 소령이 됐고 2년 뒤 대령 계급장을 달았다. 소비에트 연방의회 대의원이 됐고 최고 영예인 연방 영웅 칭호도 받았다. 레닌과 당시 서기장 흐루쇼프와 나란히 그의 사진이 내걸리기도 했다. 그는 소련과 사회주의 국가의 영웅만은 아니었다.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 등 30여 개국 자본주의 국가에 초청받아 열광하는 시민들 앞에서 연설하고 기자회견하고 팬들에게 사인을 했다. 카운트다운 직전 그가 외쳤다는 ‘포예칼리(Poyekhali, Let’s Go)!’는 전 세계 아이들의 구호가 됐다. 그의 에이전시는 당연히 소비에트 정부와 당이었고, 그의 안전과 이미지는 근년의 월드스타도 따르기 힘들 만큼 철저히 ‘관리’됐다.

알려진 바 그는 비행 훈련교관으로 다시 복귀하기까지 긴 시간을 알코올 의존증과 싸워야 했다. 그리고 복귀한 지 채 1년도 안 된 1968년, ‘미그15(MiG-15)기’ 훈련비행 중 추락사했다. 기기 고장, 음주 비행 등 숱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당일 함께 훈련비행에 나섰던 ‘Su-15’의 근접 비행을 피하느라 급강하하다 추락한 것으로 훗날 확인됐다. 소비에트 정부는 그를 소장으로 추서하고 크렘린 월 묘지에 안장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