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르게 치솟던 물가의 기세가 최근 다소 누그러진 대신 오르지 않은 품목을 찾기 힘들 정도로 범위가 넓어지고, 농산물ㆍ에너지 등 변동성이 큰 품목을 뺀 나머지 품목의 가격은 위에 끈적하게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모습이다.
1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구성 품목 458개 가운데 1년 전보다 가격이 오른 품목 수는 395개(86.2%)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물가 상승률이 정점이던 지난해 7월 당시 상승 품목 수(383개ㆍ83.6%)보다 많다. 작년 여름 이후 내리막을 탄 상승률이 4%대(4.2%)까지 하락했는데도 가격이 비싸진 품목 수는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이는 공급 충격 여파의 확산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이 다른 품목의 연쇄 가격 인상을 부른 것이다. 가령 작년 7월에는 유가와 팜유(종려유) 가격 상승이라는 공급 변수가 직접 영향을 미친 등유(80.0%), 식용유(55.6%), 경유(47.0%) 등이 상승률 상위 품목이었지만, 올 3월에는 누적된 원가 인상 요인이 시차를 두고 반영되며 도시가스(36.2%), 지역난방비(34.0%), 전기료(29.5%) 등 공공요금의 전년비 가격 상승률이 각종 기름을 능가했다.
넓게 퍼진 물가 상승 현상은 고착화로 이어졌다. 지난달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세 둔화의 핵심 요인은 석유류 가격의 급락이었다. 그러나 외식 같은 서비스 가격의 고공행진은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물가 안정 여부를 가늠할 때 농산물과 식료품,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를 따로 지수화해 참고하는데, 외부 요인에 따라 가격이 크게 출렁이는 품목을 빼고 보면 장기 물가 추세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근원물가는 가격 경직성이 커 한번 오르면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
실제 통계청이 산출하고 있는 두 가지 근원물가지수 다 오름세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농산물ㆍ석유류 제외 지수는 2020년 11월부터 29개월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방식 지표인 식료품ㆍ에너지 제외 지수는 2021년 10월부터 18개월째 매달 전월보다 상승했다. 최소 올 하반기까지는 근원물가 상승세가 전체 물가보다 천천히 둔화하리라는 게 물가당국인 한국은행과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공통된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