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 잡을 시간에 전관 먼저 잡아라

입력
2023.04.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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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검찰총장을 지낸 법조인과 식사할 때 들었던 얘기가 귓가에 생생하다. 그는 희한한 논리로 법조계 근절 대상인 ‘전화 변론’을 합리화했다. 검찰청을 직접 찾아갔더니 검사들이 자신에 대한 ‘의전’ 때문에 신경 쓰는 모습이 불편했다고 한다. 후배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수임한 사건을 전화로 설명했다는 것이다. 마중해달라고 먼저 요청했는지 물었더니, 그는 겸연쩍게 “그쪽에서 알아서 그런 것”이라고 답했다.

전관예우(前官禮遇)란 고위 관직에 있던 사람에게 퇴임 후에도 재임 때와 같은 예우를 베푸는 일이다. 사전적으론 가치중립적 의미로 보이지만, 법조계의 대표적 타파 대상으로 꼽히는 관행이다. 업무와 결부되지 않았다면 반드시 나쁘게 볼 일은 아니지만, 업무와 무관한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로 검사들이 전관들을 대하는 자세는 예나 지금이나 정말 남다르다. 최근 친분이 있는 검사 2명과 술자리를 한 적이 있다. 약속 장소에 나가 보니 검찰 출신 선배 변호사가 함께 나와 있었다. 술잔을 주고받던 검사 한 명이 어딘가에서 전화를 받더니 양해를 구하고 급하게 자리를 떴다. 알고 보니 검찰청에서 함께 일했던 또 다른 선배의 호출이었다. 남아 있는 검사 한 명은 선배를 열심히 모시더니, 먼저 떠나는 그를 따라 식당 문 앞까지 나가 차를 태웠다.

전관예우에 익숙한 이들은 대체로 특수부와 강력부 출신 남성 검사들이다. 전직 대통령과 재벌 회장,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를 때려잡던 그 검사들이다. 정의구현을 내세워 거침없는 행보를 보일 때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센 사람들이란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하지만 유일하게 검사들을 멈칫하게 만드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전관들이다. 전관 앞에만 서면 검사들은 한없이 작아진다. 검사보다 더 힘센 직업은 전직 검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평소 기세등등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진다.

그렇다고 전관들이 무조건 대우만 받는 것은 아니다. 나름 후배 검사들을 관리한다. 강력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임료 일부로 검사실에 미니 냉장고를 사준 일을 자랑스럽게 말한 적이 있다. 후배들에게 정기적으로 술과 밥을 사주는 일은 다반사다. ‘라임 사건’ 당시 현직 검사들에게 룸살롱에서 술 접대를 했던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도 그런 경우다. 가끔은 그런 자리에서 봉투도 오가는 것 같다. 직접 목격하지 않았지만, 퇴임 후 뒤늦게 ‘양심 고백’하는 검사들은 여럿 봤다.

이처럼 전관들이 현직 검사 못지않은 위세를 과시하며 법조계 물을 흐려놓고 있지만, 검찰은 이들을 감시하고 수사하기는커녕 같이 어울리고 있다. 전관예우가 사라지면 자신들에게도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 탓인지, 언론에서 요란하게 문제를 제기해야 마지못해 움직일 뿐이다.

다행히 박영수 전 특별검사 등 전관들을 손보려는 최근 검찰의 움직임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다만 제대로 수사하려면 현직 검사들과의 커넥션도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믿는 구석이 없다면 퇴직한 검사가 그렇게 과감한 행동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깡패 때려잡게 해달라고 외치지 말고 전관 때려잡을 생각부터 해야 한다. 깡패는 경찰도 잡을 수 있지만, 전관은 그들의 행태를 잘 아는 검찰만이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검사들의 퇴임 후 모습이 추악하게 인식되면 안 되지 않겠는가.


강철원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