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는 우리나라 설화에도 종종 등장한다. 그중 '동백섬 황옥공주 전설'에는 디즈니 만화영화 '인어공주'와 반대로 인어로 변하는 공주 이야기가 나온다. 상반신은 인간의 몸이지만 하반신은 물고기를 닮은 신비로운 생명체. 미지의 세계인 심해를 향한 호기심 속에 탄생한 인어는 오랜 세월 우리의 흥미를 끄는 소재였다.
2021년 7월부터 네이버웹툰에 연재 중인 윤홍 작가의 '마왕까지 한 걸음'도 그런 바다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물이다. 인어공주처럼 두 다리를 얻는 대신 '마법력'을 거의 잃은 바다의 왕 '유리아'가 마왕과의 담판을 짓기 위해 떠난 여정을 따라간다. 하급 마수(마법력이 있는 야수)를 겨우 이길 힘밖에 없지만 마족, 요정, 인간 등 여러 종족을 만나 동료로 만든 뒤 함께 위기를 극복해 간다. 서양 중세를 모티프로 한 배경이나 마왕을 꺾겠다는 목표 등 판타지 서사의 정석을 따르지만 색다른 캐릭터들과 작가 특유의 유머 등으로 매력을 뿜는 작품이다.
유리아는 최강의 존재지만 그런 힘을 다 쓸 수 없는 주인공이라 오히려 매력적이다. 어떤 적도 무찌를 수 있는 인물이 주는 경이감, 혹은 빠르게 성장하는 캐릭터에서 느끼는 쾌감과는 또 다르다. 성물인 '물병자리 목걸이'는 그에게 두 다리를 선사했지만 단 세 번만 본래 힘을 쓸 수 있게 제한했다. 세 번의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그 이후 운명은 어디로 향할지를 중심으로 모험을 지켜보는 게 재미있다.
캐릭터 간 관계도 묘하다. 유리아와의 싸움에서 패한 마족의 왕 '라글라드'는 유리아의 부하가 되지만 적개심을 계속 품고 있다.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힘을 봉인당하고 생사가 예속된 관계라 어쩔 수 없이 함께 모험을 하지만 호시탐탐 유리아로부터 벗어나려 기회를 엿보는 대목들이 긴장감을 높인다.
코믹과 진중함을 오가는 진행도 흥미롭다. '왕'이라는 존재(유리아)가 정작 끼니 걱정에 과일 서리까지 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부터 웃음이 나온다. 요정 '이리스'가 100년의 노력을 담아 만든 '무엇이든 막을 수 있는 방패'가 어처구니없게 부서져 절망하는 장면도 코믹함을 더한다. 여기에 주인공이 왕으로서 위엄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작품의 균형을 맞춘다. 바다에서 육지로 온 자신의 존재 자체가 세계의 질서를 망가뜨린다는 경고에 "내가 걷는 길이 곧 정답"이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대사가 대표적이다.
수려한 작화가 곧 설득력인 판타지 만화답게 눈이 즐거운 작품이다. 화려한 의상 디자인, 역동적인 결투 장면 등에서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상하로 움직이는 웹툰의 특성을 충분히 활용한다. 덕분에 긴 검이 부각되거나 공간감을 살려 성·숲과 같은 배경의 압도적인 규모를 표현하는 컷 등에서 더 몰입된다. 한편으론 어린 여자아이 몸을 가진 주인공과 팅커벨처럼 작은 요정, 여우 등을 귀엽게 표현한 장면들로 적당히 완급 조절도 한다. 과거를 돌아보는 컷은 대부분 흑백으로 처리해 집중도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