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치료받고 복귀해 '좋은 모델' 되길"...중독 환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입력
2023.04.08 17:00
중독 전문가 3인이 말하는
우리 안의 오해와 편견
'사회를 이롭게 하는 수치심'과
'복귀 본보기'가 필요해

“당장 구속해라.“

“앞으로 대중 앞에 서지 말아라.“

배우 유아인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지난달 27일 경찰 조사를 받고 취재진 앞에서 사과한 내용을 다룬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유명인 마약 사건이 터질 때마다 수십 년째 돌림노래처럼 따라붙는 두 가지는, 강력한 처벌과 사회적 매장.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라”는 일부 댓글은 호응받지 못했고, 유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사과문에 “(복귀를) 기다리겠다”는 댓글을 단 동료 연예인은 '응원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유씨는 마약을 투약한 범죄 피의자다.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는 마약에 중독된 환자이기도 하다. 형이 확정된 후 범법자로 처벌받아야 하지만 중독 환자로 치료도 받아야 한다. 지금까지 ‘법적 처벌과 사회적 단죄’ 쪽으로만 기울어져 있던 저울을, 이젠 ‘치료와 재활’ 쪽으로도 나란히 무게를 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도덕적 실패 아냐.. ‘사회에 이로운 수치심’까지만”

우리 사회에는 마약 중독자에게는 가혹한 비난을 퍼부어도 괜찮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다. 마약 중독자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쾌락적인 것만 좇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오해부터 걷어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내에서 마약 중독자를 가장 많이 치료하는 곳인 인천참사랑병원의 천영훈 원장은 마약 중독을 이렇게 설명한다.

“중독자들이 맨 처음 호기심에 마약을 투약한 것은 정말 잘못된 행동이죠. 하지만 중단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쾌락에서 빠져나오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고통 속에서 마약을 합니다. 왜냐하면 마약을 하면 뇌 안에서 엔도르핀, 도파민이 치솟아 뇌가 천국 위로 두둥실 떠오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다시 지상이라는 현실로 내리 꽂히게 되고 그 이후의 삶은 지옥으로 변하기 때문이에요. 뇌에 병이 생겼기 때문에 강박적으로 마약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개인의 도덕성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닌, 질병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독자가 받아야 할 사회적 비판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중독 전문가인 나종호 미국 예일대 정신과 조교수는 ‘사회에 이로운 수치심’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가 쓴 글(브런치스토리 3월 29일 게재)의 일부를 동의 하에 인용한다.

“책 <도파민 네이션>의 저자이자 스탠퍼드의 중독 정신과 전문의인 아나 렘키 교수는 수치심을 ‘사회에 이로운 수치심’(prosocial shame)과 ‘파괴적인 수치심’(destructive shame)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마약 문제가 생긴 경우 사회에 이로운 수치심은 사회적 비판과 법적 처벌 이후, 중독 치료와 재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뜻합니다. 결과적으로 그 개인은 치료와 재활을 통해 마약 사용을 줄이고 공동체에 계속 속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파괴적인 수치심이란, 비난만 하고 당사자를 사회에서 밀어내는 것입니다. 이 경우, 개인은 치료를 받지도, 다시 사회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결과적으로 개인과 사회의 마약 사용은 늘어만 갑니다.”

김성민의 길 vs '아이언맨'의 길

사회로 돌아오지 못하는 중독자들은 적지 않다. 2000년대 초 드라마 ‘인어 아가씨’ 등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던 배우 고(故) 김성민씨는 2010년 필로폰 투약으로 방송 활동을 중단했고 지상파방송 출연 정지로 케이블TV 채널에만 간간이 나왔다. 그러나 2015년 다시 마약 투약으로 10개월의 징역을 살았고 출소 후 6개월 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천영훈 원장은 김성민씨의 사례를 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성민씨가 중독에서 회복하면서 더욱 성장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등으로 찍어 보여줬다면 좋지 않았을까요. 외국은 마약 중독에서 회복된 사람들이 영화계에 복귀하고 공익적인 발언들도 하면서 좋은 역할을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게 없어요.”

무사히 사회로 돌아온 유명인 중에는 미국의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있다. 그는 배우로서 한창 성장하던 1990년대에 심한 마약 중독에 빠져 10년 넘는 시간 동안 감옥과 재활치료센터를 들락거렸다. 그럼에도 동료들은 그의 영화 캐스팅을 주선하는 등 재기를 도왔다고 한다. 그는 2004년 완전히 마약의 늪에서 빠져나왔고, 4년 뒤 영화 ‘아이언맨’으로 복귀에 성공해 세계적인 배우가 됐다.

사회 복귀에 대한 희망은 중독 치료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한국중독심리학회 회장인 서보경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부교수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이 마약 중독자를 치료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직업을 다시 갖게 하는 것이에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다시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면 회복이 빨라져요. ‘다시는 나오지 말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영구 퇴출’을 주장하는 이들이 주로 꼽는 이유 중 하나는 “대중들 특히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보경 교수는 다른 관점을 제안한다.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삶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모습의 유명인만 보여줄 필요는 없는 거죠. 삶이 망가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줄 수 있고, 잘못을 저질렀어도 치료받으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미국은 ‘약물 법원’서 치료 뒤 처벌

마약 중독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 사회의 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미국은 처벌에 앞서 치료 기회부터 준다. 마약사범만 따로 다루는 ‘약물 법원’(Drug Court)을 두고 약물 중독 관련 교육을 받은 판사, 검사, 변호사 등이 치료 관점에서 판결을 하고 일상 복귀를 지원한다. 현재 약물 법원만 4,000곳이 넘는다.

미국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70, 1980년대만 해도 법적 처벌을 강화하며 급증하는 마약과의 ‘전쟁’을 벌였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치료와 교화 중심으로 방향을 틀었다. 서보경 교수의 설명이다.

“약물 법원에서는 형사 처벌을 하기 전에 재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치료 과정을 모니터링해요. 치료를 잘 받으면 감형해주고요. 이렇게 약물 법원을 통해 치료를 받는 것이 단순히 징역형만 사는 것보다 재발 확률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미국의 모델을 따라서 캐나다, 호주도 약물 법원 제도를 도입했고,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문가들이 약물 법원 도입의 필요성을 계속 주장하고 있어요.”

"치료 시설도 없이 벌이는 ‘전쟁’... 무슨 소용"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치료 인력과 시설조차 미미하다. 정부가 지정한 마약류 중독자 전문치료보호기관 중 실제 중독자를 치료하는 곳은 전국에 단 한 곳(인천참사랑병원)뿐이다. 그런데 지난해 마약사범은 약 2만 명에 육박했다. 전문가들은 실제 중독자는 검거된 인원보다 10배 많은 2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정부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전쟁 준비’가 안 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치료 전문인력도 시설도 없는 상황에서 벌이는 ‘전쟁’은 자칫 “잡아 넣겠다”는 검거 실적 위주로만 흐르기 쉽고, 출소한 마약사범들이 되려 마약을 더 넓게 퍼트리는 매개체가 될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천영훈 원장의 지적이다. “마약 사범 재범률이 36~40%나 되고, 처벌만으로 해결 못 한다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입증된 사실입니다. 마약사범은 교도소에서 소위 ‘마약방’이라 불리는 방에서 같이 생활하는데 그곳에서 마약을 구하는 온갖 지식과 방법, 전국 배급망을 얻어서 출소하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마약과의 전쟁'으로 수사기관이 대거 구속시킨 중독자들이 이런 상태로 출소하면 누가 감당할 겁니까. 마약 중독자를 치료하는 의사나 의료기관도 없이 전쟁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유아인, ‘좋은 모델’ 되어주길”

제도 확충도 사회적 시선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결코 치료를 놓으면 안 된다. 전문가들이 ‘약물 중독 환자’ 유아인씨에게 전하는 조언이다.

천영훈 원장 _ “유아인씨가 숨기보다는 치료받는 과정을 떳떳하게 알려서 약물 중독은 치료가 필요한 '병'이고 호전될 수 있는 '병’이라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회복을 응원하고요. 유아인씨가 그런 좋은 모델이 됐으면 좋겠어요. ‘혼자하면 안 되지만 전문가의 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서보경 교수 _ “마약 치료를 오래 한 의사, 상담사 그리고 회복자들이 하나같이 입 모아서 하는 얘기는 ‘익명의 약물중독자들(NA·Narcotics Anonymous)'에 꼭 가라는 것입니다. NA는 중독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운영하는 익명의 자조모임이에요. 의사, 상담사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NA가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http://www.nakorea.org 사이트에 가면 모임 일정이 있어요. 이 모임에 가기 위해선 일반인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분명 도움이 될겁니다.”

나종호 교수 _ “유아인씨뿐 아니라 마약에 중독된 환자들이 제대로 된 중독 치료와 재활을 통해 아이언맨처럼 다시 돌아오길 바랍니다. 미국의 많은 연예인들이 본인 혹은 가족의 중독 문제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이를 치료를 통해 극복한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하는데요.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본보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마약 중독이 사회적 매장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마약에 중독되었던 사람이 제대로 치료를 받은 후에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본보기가 되어주길, 중독 정신과 전문의로서 응원합니다.”

이 당부와 응원은 우리 사회에 숨어 있는 ‘20만 명의 유아인’ 모두에게 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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