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와 야수'는 정말로 있었다

입력
2023.04.06 19:00
25면
동화는 없었고, 진짜 '미녀와 야수'는 행복하지 않았다

위 그림은 털북숭이 남자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은 여자를 묘사하고 있다. 두 남녀는 누구일까? 16세기 플랑드르 화가이자 삽화가인 요리스 회프나겔(Joris Hoefnagel)이 그린 네 권의 필사본 중 제1권 '이성적인 동물과 곤충들(불)'에 포함된 삽화다. 나머지 세 권은 '네 발 동물 및 파충류(땅)', '수생동물 및 조개류 동물(물)', '나는 동물 및 양서류(공기)' 등이다.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회프나겔은 이 책들에서 수천 마리의 다양한 동물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그렇다면 동물책 삽화에 등장한 이 남자는 인간이 아니고 짐승이란 것인가?

16세기에 살았던 남자의 이름은 페트루스 곤살부스다. 여자는 그의 아내 카트린이다. 현대의학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늑대인간 증후군' 즉 선천성 다모증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그를 거대한 털북숭이 괴생명체인 빅풋(Bigfoot), 혹은 신화 속 괴물인 늑대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이 삽화는 당시 사람들이 다모증 인간을 어떻게 보고 생각했는지 말해준다.

페트루스 곤살부스는 현실판 '미녀와 야수'의 주인공이다. '미녀와 야수' 이야기는 유럽 지역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 내려오는 설화다. 아름다운 소녀가 무시무시한 모습을 한 짐승의 마음을 녹여 멋진 왕자로 변신시키는 스토리다. 이 동화는 요정, 성, 곤경에 처한 아버지, 역경을 딛고 행복해지는 착한 소녀, 사랑의 힘에 의해 비극적 운명으로부터 구원된 잘생긴 왕자 등 낭만적 판타지와 교훈으로 가득하다. 1756년, 잔마리 르프랭스 드 보몽 부인이 민담을 바탕으로 동화책을 출판한 이래 영화, TV 만화, 연극에서 수없이 각색되고 재생산되었다.

16세기 실존인물 페트루스와 카트린 곤살부스 부부가 드 보몽 부인의 동화 버전에 영감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페트루스 곤살부스는 아프리카 서북부의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에서 얼굴과 몸 전체가 검고 두꺼운 털로 덮인 채 태어났다. 어린 페트루스는 철창 우리에 갇혀 생고기와 사료를 먹으며 동물처럼 사육되다가, 프랑스 앙리 2세의 대관식 선물로 보내졌다. 18세기까지 유럽 각국의 궁정에서는 기형적 외모나 광인, 왜소증 장애인을 수집해 애완동물처럼 소유하고 있었다. 이런 기이한 인간 컬렉션은 왕족의 부와 지위의 상징이었고, 페트루스도 진기한 수집품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그가 도착한 첫날, 소년을 지하 감옥에 가두고 관찰한 궁정의 의사와 학자들은 그가 짐승이 아니라 털로 덮인 인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이 늑대소년이 송곳니와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가 페드로 곤잘레스라는 자신의 이름을 부드럽고 침착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기괴한 외모 때문에 부모에게 버림받고 동물의 처지로 전락했지만, 놀랍게도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매우 흥미를 느낀 앙리 2세는 이름을 페트루스 곤살부스로 바꾸고, 이 야생의 소년을 신사로 바꿀 수 있는지 알고 싶어 교육을 시켜보기로 한다.

뜻밖에도 그는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등 3개 국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읽고 썼다. 프랑스 문학과 군사기술에 정통했으며 궁정 예절도 빠르게 익혔다. 미래에 나올 동화에서처럼, 짐승의 털 아래에는 품위 있고 지적인 왕자가 있었다. 앙리 2세는 그를 매우 좋아했고 귀족 칭호까지 내렸다. 또 그에게 프랑스 궁정의 최고 고위인사들이 담당했던 왕의 식탁에 관한 직무를 맡겼다. 연회를 주최하고 감독했으며, 상당한 보수도 받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인간보다 열등한 '동물'로 보았고, 그 누구도 진정으로 자신들과 동등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다.

후원자 앙리 2세가 마상 시합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사망한 후, 그는 왕비 카트린 드 메디치의 소유물이 된다. 그녀는 페트루스에게 가혹했다. 그를 다시 동물의 위치로 되돌려 놓았다. 왕비는 궁정 하인의 딸인 아름다운 처녀 카트린을 그와 강제로 혼인시켰다. 둘 사이에서 어떤 자식이 태어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첫날밤, 여왕이 '괴물'과의 결혼을 주선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신부는 얼마나 놀랐을까. 그러나 카트린은 여왕에게 반항할 수 없었고 이혼도 할 수 없었다. 페트루스는 이미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카트린의 충격과 괴로움도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그는 착하고 온화한 사람이었다. 카트린은 처음에는 두려웠겠지만 점차 마음의 자물쇠를 열었을 것이다. 어쩌면 연민이나 사랑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카트린의 손이 페트루스의 어깨에 살짝 얹힌 초상화를 보자. 역사가들에 따르면, 그런 종류의 제스처가 커플 초상화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므로 그들이 실제로 사랑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다소 무표정하다. 공허한 눈빛은 감정적 거리를 보여준다. 페트루스는 디즈니 동화의 괴수처럼 멋진 왕자로 변신하지 못했다. 현실에서는 해피 엔딩이 없었다. 부부는 비인간적 취급을 받으며 이 궁정에서 저 궁정으로 유랑했고, 털로 뒤덮여 태어난 그들의 자식들은 귀족들을 위한 선물이 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그중 한 명이 토그니나라는 별명을 지닌 안토니에타였다. 다음 그림은 16세기 이탈리아 여성 거장 라비니아 폰타나가 그린 안토니에타의 초상화다.

안토니에타의 손에는 다음과 같이 쓰인 문서가 들려 있다. '카나리아 제도에서 발견된 페트루스 곤살부스가 프랑스 왕 앙리 2세에게 선물되었고, 다시 파르마 공작에게 팔렸다. 나는 그의 후손인 안토니에타이며 지금은 이사벨라 팔라비치나 부인의 궁정에 살고 있다.' 궁정예복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소녀는 비극적인 가족사가 적힌 편지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다. 화가는 마치 동물의 품종 증명서처럼 소녀의 혈통의 역사를 보여주려고 했다. 자식을 강아지 분양하듯 떠나보내야 했던 이러한 삶에서 두 사람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었을까.

페트루스가 생을 마친 카포디몬테의 기록물 보관소에는 그의 사망기록이 없다. 역사가들은 그가 인간이 아니라 동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사망기록 자체가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기독교의 매장의식도 허용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동화는 없었다. 진짜 '미녀와 야수'는 행복하게 살지 않았다.

'미녀와 야수' 이야기는 겉모습을 보고 누군가를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을 준다. 아이들에게 정신의 추함과 육체의 추함을 분별하고, 마음과 영혼의 광채를 보도록 가르친다. 실제 '미녀와 야수' 커플의 슬픈 삶,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태도는 비인도주의적 과거 역사의 모습일 뿐일까? 현실에서는 이 교훈이 얼마나 공허하고 위선적인 것인가.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