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도 골라 먹는 재미' 고기먹방의 성지 아시나요

입력
2023.04.10 04:00
19면
[우리동네 전통시장] <19> 청주 서문시장
'삼겹살 원조 청주' 내세워 거리 조성
청국장삼겹살·더덕삼겹살 '다양한 맛'
황금빛 돼지·돼지 벽화 등 볼거리 가득
손님 몰려들며 청주 관광명소로 부활 
"삼겹살 가게 더 늘려야" 숙제는 여전

편집자주

지역 경제와 문화를 선도했던 전통시장이 돌아옵니다.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도 지역 특색은 살리고 참신한 전략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돌린 전통시장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충북 청주 서문시장 풍경은 여느 전통시장과는 사뭇 다르다. 물건을 진열한 매대나 좌판이 안 보인다. 가격 흥정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곳 시장의 진면목을 엿보려면 한 발짝 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점포에 발을 들이는 순간, 시끌벅적하고 먹거리가 지천인 장터 풍경이 펼쳐진다.

봄볕이 가득 쏟아진 지난 3일 오후 청주 서문시장. 초대형 금빛 돼지 조형물이 반기는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고기 익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구수한 향에 이끌려 들어간 한 식당에는 삼겹살을 안주 삼아 건배를 외치는 이들로 가득했다. 염복순(65·청주시 흥덕구)씨는 “여기 시장은 집집마다 고기 맛이 독특하고 가격도 저렴해 자주 회식을 하러 온다”고 말했다. 옆 테이블에선 서울에서 온 20~30대 관광객 4명이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식당 주인 김동진(58)씨는 “최근 청주가 드라마 ‘일타 스캔들’ ‘더 글로리’ 촬영지로 뜨면서 주말이면 외지인의 발길이 부쩍 잦아졌다”고 활짝 웃었다.


2012년 삼겹살 식당 12곳으로 시작

서문시장은 지역의 대표 음식인 삼겹살을 특화해 쇠락한 시장을 살린 곳이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서문시장은 한때 청주를 대표하는 시장이었다. 충북 1호 등록시장으로 50여 년 번성했지만, 도심 공동화 현상을 피하지 못했다. 폐점이 늘고 상권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고사 직전에 몰리자 상인들은 음식 특화거리를 궁리해냈다. 소재는 청주 음식문화를 상징하는 삼겹살로 정했다. 청주 사람들은 1960년대 초 돼지고기로 성업한 청주우시장 주변 식당들이 삼겹살 원조라고 믿고 있다. 상인들은 시장 내 폐점포 12곳을 삼겹살 식당으로 개조했다. 골목 곳곳에는 아기돼지 삼형제 등 돼지 벽화를 그렸다. 다산과 풍요의 상징인 돼지를 다양한 캐릭터로 표현한 조형물도 세웠다. 2012년 3월 3일 서문시장 삼겹살 거리가 탄생했다.

서문시장 삼겹살은 좀 특별하다. 청주 삼겹살의 전통인 간장소스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고기를 불판에 바로 올리는 게 아니라 달인 간장에 적셨다가 굽는다. 고기 잡내가 안 나고 육질이 부드러워져 감칠맛이 강해진다. 이 간장은 조선간장에 생강, 계피 등 10여 가지 재료를 넣어 짜지 않고 옅게 달여내는 게 비결이다. 업주들은 간장을 달일 때 녹차나 당귀 등을 따로 첨가해 자신만의 비법을 갖고 있다. 고기를 숙성시키는 방식도 다채롭다. 청국장에 담아낸 삼겹살, 스테비아를 첨가한 삼겹살, 더덕 향이 나는 삼겹살, 고추를 넣어 톡 쏘는 삼겹살 등 가지가지다.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른 점포들도 삼겹살 효과

서문시장은 2020년 6월 국내 최초의 한돈 인증 거리로 지정됐다. 이에 따라 한돈자조금 관리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친 국내산 돼지고기만 유통된다. 이곳 상인들이 ‘최고 품질의 국내산만 판매한다’는 자부심을 갖는 이유다. 매년 3월 3일이면 삼겹살 축제가 열린다. 이날은 거리에 테이블을 가득 펼쳐놓고 저렴한 가격에 생삼겹살을 무제한 제공한다. 갖가지 문화공연과 체험행사도 벌어진다. 코로나19 때문에 4년 만에 열린 올해 삼겹살 축제에서는 이틀(3월 3~4일) 동안 수만 명의 인파가 청주는 물론 전국에서 몰려 삼겹살과 문화 행사를 만끽했다.

삼겹살거리로 거듭난 서문시장은 지역 명소로 완전히 부활했다. 이젠 청주를 찾는 관광객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사람이 모여들면서 시장 내 다른 업종의 점포에도 생기가 돌고 있다. 현재 서문시장 내 점포는 모두 68개소. 이 가운데 호프집, 식자재점, 카페, 옷가게 등 절반 이상이 삼겹살거리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삼겹살 집을 늘려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애초 상인회는 삼겹살거리에 40~50개 삼겹살 식당을 유치할 참이었다. 그러나 현재 운영 중인 식당은 여전히 12개소에 머물고 있다. 서너 개 점포가 열고 닫고를 반복했을 뿐, 10여 년간 늘어난 점포는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상인들은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시간을 두고 건물주를 설득하고, 요식업계에 청주 삼겹살의 우수성을 홍보해 자발적인 입주를 이끌겠다는 복안이다. 조남억 서문시장 상인회장은 “죽어가던 시장이 특화거리 덕분에 활기를 찾고 있다”며 “개성이 강한 고깃집과 흥미로운 삼겹살 이야기를 더 발굴해 전국에서 가장 특색 있는 시장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말했다.


청주= 한덕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