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납치·살해 '윗선' 첫 입건... 경찰, 배후 규명 수사 본격화

입력
2023.04.0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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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살인 교사 혐의 강남 재력가 입건
착수금 주며 범행 의뢰한 것으로 추정
경찰, 실체 파악할 금전거래 규명 총력

서울 강남 40대 여성 납치ㆍ살해 사건에 연루된 추가 공범이 5일 붙잡혔다. 이날 신상이 공개된 납치ㆍ살해 실행범 3명(구속)의 ‘윗선’으로 추정되는 첫 배후 인물이다. ‘강도살인교사’ 혐의가 적용된 것만 봐도 경찰의 배후 규명 수사가 본격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당 피의자는 피해 여성과 ‘가상화폐’ 투자로 갈등을 빚어 범행 동기도 금전 문제 쪽으로 굳어지고 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이날 오후 경기 용인시에서 코인업계 관계자 유모씨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유씨는 이경우(36ㆍ법률사무소 직원)와 황대한(36ㆍ주류회사 직원), 연지호(30ㆍ무직) 3인조에게 피해자 납치ㆍ살해를 의뢰한 혐의를 받는다. 이로써 이번 사건의 피의자는 예비 단계에 가담한 20대 종범(강도예비 혐의)을 포함해 5명으로 늘었다. 경찰은 유씨의 주거지, 차량 등을 압수수색하고, 체포 당시 유씨와 함께 있었던 아내 황모씨도 임의동행해 조사하고 있다.

앞서 경찰은 “유씨 측이 착수금 명목의 돈 4,000만 원을 건넨 것으로 안다”는 황씨 진술 등을 토대로 그를 추적해왔다. 황씨와 연씨가 피해자를 납치한 뒤 유씨 부부가 주범 이씨를 수차례 만난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남 재력가로 알려진 유씨 부부는 코인 투자 등으로 피의자 이씨 및 피해자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유씨 부부와 이씨, 피해자는 2020년 P코인에 나란히 투자했다가 이후 폭락하는 바람에 큰 손실을 봤다. 유씨 부부와 이씨의 손해액은 각각 1억 원, 8,000만 원이었다. 피해자 손실 규모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똑같이 큰돈을 잃었지만, 피해자와 이씨는 유씨 부부가 ‘시세조종’을 통해 코인 가격 폭락을 유도했다고 의심했다. 이에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호텔에 투숙하던 유씨 부부를 찾아가 코인 1억9,000만 원어치를 탈취하는 데 가담했고, 고소(공동공갈)를 당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피해자는 다른 투자자들을 모아 부부를 상대로 소송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원래 피해자와 가까웠던 이씨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유씨 부부 편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의 정확한 관계와 범행 동기를 규명하기 위해 계좌거래 내역 등을 면밀히 살피는 중이다.

검찰도 4명이 관련된 사건을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원래 성남지청에서 수사하던 피해자와 이씨, 유씨 부부 사이의 공동공갈 사건을 3일 넘겨받아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앞서 경찰 수사에선 둘 중 이씨만 검찰에 송치됐다.

유씨 부부가 유일한 배후가 아닐 수 있다는 관측도 여전하다. 실제 경찰은 이날 부부 외에 3명을 더 출국금지 조치했다고 밝혔다. “증거 인멸이나 도피 우려가 있다”면서 대상자의 신원을 노출하지 않은 것도 이번 사건에 깊이 연루된 추가 공범이 있을 것이란 전망을 낳게 한다.

경찰은 이날 “중대성과 잔인성이 인정된다”며 범행을 실행한 3명의 신상공개를 결정했다. 세 사람은 지난달 29일 오후 11시 46분쯤 강남구 역삼동 아파트 앞에서 피해자를 차량으로 납치한 뒤 이튿날 오전 살해하고 대청댐 인근 야산에 암매장한 혐의(강도살인ㆍ사체유기)를 받는다.

최다원 기자
나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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