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파장을 일으킨 한 사진을 기억한다. 손목과 발목을 각각 묶은 끈을 등 쪽으로 연결해 사지가 꺾인 '새우꺾기' 방식으로 포박된 한 남성. 보기만 해도 고통이 전해지는 듯해 고개가 절로 옆으로 돌아간다. 전쟁터가 아니다. 경기 화성 외국인보호소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난민 신청자 자격으로 체류하다 강제 퇴거 명령을 받은 모로코인 남성은 보호소 독방에 갇혀 이런 처우를 감내했다.
사진이 공개되기 전까지 나와 당신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까. 이 땅에 이방인들이 겪는 좌절과 고통을 그저 외면하고 묵인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한국은 다문화 사회(전체 인구 중 외국인 비율 5% 이상) 진입을 목전에 둔 반면 난민 인정률은 1.3%에 불과하다. 온전한 내일을 위해 이런 부조리를 직시한 소설들이 소중한 이유다.
지난달 출간된 이유의 '당신들의 나라'는 그중 돋보이는 소설이다. 15년 동안 일하던 은행에서 희망퇴직을 권유받고 시간적 여유가 생긴 화자가 우연히 활동가와 함께 정기적으로 외국인보호소를 찾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강제퇴거명령을 받고 본국 송환 전까지 머무르는 그곳을 통해 만난 여러 인물들의 사연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진다. 작가는 실제 보호소를 방문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형편없는 보호소의 환경과 수용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 등을 생생히 보여준다.
읽는 내내 화자와 각 보호인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열다섯에 엄마를 잃은 일, "세상에 내 집은 없다"는 걸 깨닫는 일, 고립 속에서 책을 유일한 소통의 창으로 삼고 버텨가는 삶, 외국어에서 공포와 위압감을 느껴본 경험 등이다. 결국 이 소설을 읽는 것은 본국에 당장 돌아갈 수 없어 보호소에 머물고 있는 그도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걸 깨닫는 과정이다.
특히 자발적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보호소 화장실을 청소하는 '파란'은 화자와 특별한 점을 공유한다. 나이지리아에서 종교 분쟁으로 한국으로 도피해온 파란은 할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보호소에서 몇 년을 버티고 있다. 그는 자신의 "쓸모에 대한 권리"를 느끼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그 선택이 보호소 화장실 청소였다. 희망퇴직 압력에 남편 대신 자신이 은행에서 퇴사한 후 특별한 목적도 없이 보호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화자와 겹쳐 보이는 대목이다.
나의 옛 직장 동료 '지연' '나나'의 등장은 이방인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관찰하는 내부인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전기가 된다.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난 지연은 그곳에서 "동양인 여자가 겪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든 차별을 겪으며 산다. 한편 직장에서 동료와 선후배들로부터 인격 살인을 당한 뒤 한국 사회에서 도망쳐 타국으로 간 나나는 그곳에서 난민 신청을 하려다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듣는다. "박해 가능성이 전혀 없는" , "어느 나라보다 안전한" 나라에서 왔기 때문이다. 나나에게는 가혹하고 살아남기 힘들었던 고향이란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와 너희를 가르는 경계의 무의미함을 느끼게 한다.
비슷한 시기 출간된 '느티나무 수호대'는 10대의 시선에서 다문화 사회를 그렸다. 베스트셀러 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김중미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대포읍에 수백년 된 느티나무가 인간의 모습을 한 '느티 샘'이 돼 마을 아이들을 보살핀다는 판타지적 상상력이 흥미롭다. 베트남에서 온 엄마가 창피하고 자기 자신도 싫어했던 중학생 '도훈'이 느티 샘을 만나 치유받고 재개발로 위기에 처한 느티 샘을 구하기 위해 친구들을 모아 가는 여정을 그렸다. 작가는 도훈과 친구들을 통해 베트남, 미얀마, 나이지리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들의 생생한 사연을 풀어냈다. "한국은 진짜 다문화 사회인데 사람 인식만 다문화가 아니다"라는 깨달음은 아프다. 한국에서 겪는 차별, 정체성 혼란을 겪는 이주 아동 등의 얘기가 얽혀 있다. 청소년 소설이지만 성인도 순수한 연대의 힘을 믿게 하는 온기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