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강원 화천군의 한 사육곰 농장. 사육곰 보호단체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10여 명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곳에서 15년가량 살던 반달가슴곰 2마리를 두 단체가 운영하는 임시보호시설로 이동시키는 작업을 앞두고 있어서였다. 곰을 최대한 흥분시키지 않기 위해 마취 작업에는 수의사와 사육사 활동가들이 참여하고, 다른 활동가들은 곰들이 마취될 때까지 근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1시간쯤 지나자 한 마리가 마취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육곰 농장에 도착하자 낡고 좁은 철창으로 된 사육장이 눈에 들어왔다. 곰 두 마리가 평생 한번도 벗어나보지 못한 공간이었다. 먼저 마취된 곰은 들것에 실려 이동을 위한 케이지로 옮겨졌다. 다른 곰은 마취제가 든 블로건(입으로 불어서 화살이나 침을 날리는 장비)을 맞고도 사육장 내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자세히 보니 한쪽 발이 엉덩이에 붙은 상태였다.
40여 년간 곰을 사육해온 농장주 이모(81)씨는 "어릴 때 옆 칸 곰에게 다리를 물렸는데 제대로 치료를 해주지 못했다"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세 발로 살았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오래 길러온 곰을 보내니 시원섭섭하다"며 "곰을 돌보는 사람들이 데려간다 하니 좋은 데 가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활동가들이 마취된 곰 다리에 엑스레이(X-ray)를 찍어보니 다리가 부러지거나 잘려 나간 게 아니라 다리가 접힌 채 그대로 굳어버린 상태였다. 제대로 자라지 못한 발과 다리는 아기곰의 것처럼 작았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에서 활동하는 박정윤 수의사는 "제때 치료만 했어도 세 발로 절룩거리며 살지 않을 수도 있었다"며 "얼마나 아프고 답답했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며 안타까워했다.
어렵게 마취를 시켰지만 이동 전까지 곰들을 다시 깨워야 했다. 마취된 상태에서 이동하면 질식 등의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곰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마취됐다 또 깨어나야 하는 상황이라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순영 트레이너가 먼저 깬 곰에게 꿀을 줘봤지만 한껏 예민해진 곰은 먹지 않았다. 늦게 깬 곰은 아예 케이지 철창을 부여잡고 있었다. 활동가들은 마취에서 깨어난 곰들을 무진동차량에 태워 화천군 임시보호시설로 옮겼다.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한 곰들은 다행히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휴식을 취했다. 곰들의 이주는 이렇게 5시간여 만에 끝났다.
강원 화천군의 사육곰 농장 1곳이 문을 닫으면서 이제 전국 사육곰 농장은 20곳에서 19곳이 됐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지만 민간단체가 시민들의 모금으로 이뤄낸 것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이번 사육곰 농장 폐쇄는 곰보금자리프로젝트가 2019년 당시 사육곰 농장을 조사할 때 맺은 인연이 이어진 것이다. 도지예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는 "임시보호시설에서 곰 3마리를 떠나보내면서 어려움에 처한 곰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며 "수익이 나지 않아 농장 운영을 그만두고 싶어 했던 농장주에게 곰 인수를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카라는 2021년 5월부터 화천군의 한 사육곰 농장을 인수해 임시보호시설로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곰들이 흙을 밟고 수영하며 놀 수 있는 방사장인 '곰숲'도 지었다. 15마리 가운데 노환 등으로 '편안이', '보금이', '미자르'가 떠나면서 12마리의 곰이 생활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2마리가 들어오면서 14마리가 됐다.
여전히 국내에는 300여 마리의 사육곰이 남아 있는데 그 수는 점차 줄고 있다. 이는 곰들에게 그만큼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카라는 14마리의 곰을 포함한 나머지 곰들을 위해 생크추어리(야생적응장) 건립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최인수 카라 활동가는 "사육곰은 사라지고, '곰'만 남게 되는 게 사육곰 산업의 진정한 종식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육곰 사육 종식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건 '곰 사육 금지 및 보호에 관한 특별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이 법안에는 '누구든지 곰의 부산물 채취 등을 목적으로 사육곰을 사육하거나 증식해서는 안 된다', '민간은 민간활동을 통해 보호정책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는 "사육곰 특별법이 1년 넘게 국회에서 계류돼 있는 동안 철창 속 사육곰들의 고통은 이어지고 있다"며 "하루빨리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