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 여성 김영미(가명)씨는 보청기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다. 그는 자립을 위해 20대 초반부터 일자리를 알아봤다. 그러나 매번 면접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외식업체 등 여러 곳에 면접을 봤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어눌한 말투와 청각장애 때문에 다들 고개를 저었죠."
황당하게도 장애인을 우대하는 곳도 마찬가지로 그를 외면했다. "채용 공고에 장애인 우대라고 쓰여 있어 지원했더니 면접 때 장애인이 어떻게 일할 수 있냐고 하더군요. 장애인 우대 공고는 형식일 뿐 진짜 장애인을 뽑겠다는 뜻이 아니었어요."
지난달 김 씨는 어렵게 일자리를 구했지만 그마저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모 공공기관의 장애인 채용에 선발돼 물품 정리 일을 했어요. 그런데 직원들은 제가 장애인이라 잘 듣지 못해 여러 번 불러야 해서 답답하다며 짜증을 냈죠. 그 분위기를 견딜 수 없어 2주 만에 그만뒀어요."
결국 김 씨는 취업을 포기했다. 그의 마지막 한마디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장애인도 살아야죠. 하지만 취직이라는 한마디가 저에게는 언감생심이네요."
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등록 장애인은 264만 명, 전체 국민의 5.12%다. 이 가운데 경제활동 연령인 15~54세 장애인은 약 67만 명이다. 그러나 이 중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장애인은 지난해 기준 38%에 불과해 전체 인구의 경제활동 비율 64.9%에 비하면 현저하게 낮다. 특히 장애인 고용률은 36.4%여서 전체 고용률 63%의 절반 수준이다.
부족한 장애인의 일자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장애인 의무고용률이다. 정부에서는 공공과 민간기업 등에서 장애인을 인력 규모 대비 최소 3.1% 이상 채용하도록 의무화했으나 의무고용률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곳들이 많다.
의무고용률을 채운 기업 중에도 편법을 사용해 숫자만 맞춘 곳도 있어 실상을 들여다보면 허울뿐인 경우가 있다. 발달장애인을 채용하는 사회적기업 베어베터의 이진희 대표는 "인턴도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로 잡히다 보니 2, 3개월 단위로 갈아치우는 곳도 있다"며 "두세 달 간격으로 떠돌면 살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심지어 돈 받고 서류상으로 장애인을 채용한 것처럼 꾸며주는 장애인 채용 알선 브로커들도 판을 친다. 네이버 등 포털에서 '장애인 고용' '장애인 채용' 등으로 검색하면 기업을 대신해 중간에서 장애인 고용을 관리해 주는 업체들이 나온다.
이 가운데 일부는 장애인에게 적은 돈을 주고 서류상으로만 고용한 뒤 재택근무 명목으로 방치하거나 사무실에 나올 필요가 없는 운동선수로 등록한다. 그렇다 보니 장애인 부모들 사이에 탁구채 들 수 있는 힘만 있으면 채용된다는 말이 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박인수(가명)씨는 "장애인을 탁구 등 체육선수로 고용했다고 주장하는 브로커들이 있다"며 "동네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장애인 선수라고 주장하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말했다.
장애인들이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들이 장애인 고용에 적극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적 책임이 높은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이 중소·중견기업보다 낮아 일자리 수 자체가 더디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3.1%다.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100명 중 3명이 장애인이라는 뜻이다. 언뜻 보면 많아 보이지만 이 숫자는 그나마 중증장애인 1명을 '2명'으로 간주했을 때 가능한 수치다. 순고용률로 보면 2.4%에 불과해 법정 장애인 의무고용률(공공부문 3.4%, 민간부문 3.1%)에 미치지 못한다.
부문별로 보면 공공보다 민간, 그중에서도 상시고용인원 1,000명 이상 대기업 고용률이 가장 낮다.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얼마나 달성했는지 살펴보면 민간기업 이행률은 42.9%로 전체 평균(43.7%)은 물론이고 공공기관(64.3%)이나 공무원(70%)에 비해 턱없이 낮다. 특히 상시 근로자 1,000명 이상 대기업의 이행률은 32.1%로, 중소·중견기업은 물론 100인 미만 기업체 이행률(36.6%)보다도 낮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제출받은 '장애인 고용부담금 현황'에 따르면 2021년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채우지 못해 부담금을 낸 상위 50개 기업 중 37곳이 민간기업이다. 이들의 장애인 의무고용 인원은 1만7,210명이었지만 실제 고용은 9,375명으로 54.5% 수준에 그쳤다. 장애인 고용률이 1%에 미치지 못하는 민간기업도 11곳이나 됐는데, 이들의 장애인 채용률은 의무 채용 규모의 24.4%에 불과했다.
정부는 1991년 장애인고용법 시행 당시 국가·공공기관 2%, 민간기업 1% 수준이었던 법정 의무고용률을 32년간 각각 3.6%, 3.1%(2023년 기준) 수준으로 높였다. 내년에는 국가·공공기관 고용률이 3.8%까지 올라간다. 의무고용률을 꾸준히 높여 장애인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다. 의무고용률을 달성하지 않으면 매달 채용하지 않은 인원수만큼 최저임금의 60~100%에 이르는 고용부담금을 내야 하고, 초과 달성하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 기업의 장애인 고용을 촉진하고 있다.
장애인 고용률이 현저히 낮은데도 불구하고 고용 노력을 하지 않는 기관과 기업들을 매년 공개하는 것도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러나 민간기업의 경우 의무고용률의 50%, 즉 1.55%만 넘으면 공표 대상에서 제외된다. 즉 명단 공표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이에 한국일보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을 상대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연도별 장애인 의무고용을 하지 않은 대기업집단 순위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해당 기관에서는 영업비밀에 해당해 법인 등의 이익 침해가 있을 경우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정보공개법 제9조 1항 7호를 근거로 정보 공개를 거부했다.
참고로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10년 연속 장애인 고용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기업을 공개했는데 무려 74곳이나 된다. 이 중 프라다코리아 등 3개 기업은 10년 연속 장애인을 한 명도 고용하지 않았다. 아무리 명단에 자주 올라도 기업 차원에서 '불명예'일 뿐 실효성 있는 제재 수단이 없다는 것이 맹점이다. 이부용 고용노동부 장애인고용과장은 "명단 공표 대상 기업이 워낙 많아 주목도가 떨어지는 부작용이 있다" 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고용을 늘리려면 우리나라의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과 프랑스의 중증 장애인 및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각 5%, 6%다. 또 장애인 미고용에 따른 부담금도 최저임금보다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다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은 "장애인에게 노동권은 생존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문제"라며 "장애인들을 복지 서비스로 보호하는 것을 넘어 노동을 원하면 할 수 있도록 접근 가능한 노동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