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원전의 독자 수출을 두고 한국수력원자력과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소송 중인 가운데 미국 에너지부가 한수원의 체코 원전 수출 입찰 정보 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미 연방정부는 한수원에 체코 원전 수출 관련 신고를 권고하며 대신 '신고는 반드시 미국 기업이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단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원은 "에너지부가 의견을 전한 것에 불과하다"며 원전 수출에 차질 없다는 입장이지만 '한국형 원전' 기술 상당 부분이 웨스팅하우스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진 만큼 양측 갈등이 길어질 경우 우리나라 원전 수출이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5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한수원은 지난해 12월 미국 에너지부에 체코 원전 입찰 관련 정보를 제출했지만 올해 1월 반려 통보를 받았다. 미 정부는 미국의 특정 원전 기술을 수출 통제 대상으로 지정해 외국에 이전할 경우 에너지부에 허가를 받거나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형 원전 기술을 체코에 수출하려는 한수원은 이를 따를 필요가 없지만 "한미 관계와 핵 비확산 협력을 고려해" 정보를 제공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에너지부는 한수원에 보낸 서한에서 "규정에 따라 에너지부 신고는 미국인(또는 미국 법인)이 제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신고해야 받아주겠다는 해석이 에너지 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한국형 원전인 'APR-1400' 기술을 한국이 혼자 힘으로 만든 것인지 웨스팅하우스의 도움을 받은 것인지 여부다. APR-1400은 한국 기술로 개발한 3세대 원자로인데 웨스팅하우스는 APR-1400에 자사 기술이 쓰였다며 한국이 독자적으로 원전을 수출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9년 한국전력이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수출할 때도 APR-1400이 적용됐지만 당시 한전은 웨스팅하우스에 기술료를 지불하지 않았다. 2017년 한국이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수출을 추진하며 APR-1400의 지식재산권 이슈가 떠올랐지만 수주에 실패하면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잠잠했던 갈등은 지난해 10월 웨스팅하우스가 한수원과 한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다시 수면에 올랐다. 때문에 에너지 업계 일부에서는 미 정부가 소송에 어떤 입장인지를 살피기 위해 한수원이 체코 원전 입찰 정보를 에너지부에 알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수원은 지난해 8월 이집트 원전 건설을 수주했을 때에는 관련 정보를 미 에너지부에 내지 않았다. 한수원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해외 원전 수출 기술은 기본적으로 웨스팅하우스와 연결돼 있다"면서도 "(웨스팅하우스의 원천 기술을 인정하더라도) 체코, 폴란드 등 대부분 수출 대상국이 미국에 관련 정보를 제출하기만 하면 되는 일반 허가 대상국이므로 크게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수원은 소송과 관계없이 원전 수출을 추진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현재 원전 지식재산권 관련 한미 기업이 소송과 중재 절차를 진행 중이지만 체코 신규 원전 사업의 입찰은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APR-1400 원천 기술 여부를 놓고 한미 갈등이 길어지면 우리나라 원전 수출이 직간접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10월 한수원이 뛰어든 40조 원 규모의 폴란드 원전 수주전에서 탈락한 게 대표적이다. 폴란드 정부는 첫 원자력발전소 건설 1단계 사업에서 웨스팅하우스 기술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는데 한수원이 그런 웨스팅하우스와 소송으로 갈등을 빚으면서 한수원과 손잡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결국 폴란드 정부는 웨스팅하우스에 원전 건설을 맡겼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번 체코 원전 수주가 폴란드 사례를 재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체코 두코바니에 8조8,000억 원대의 1,200메가와트(㎿) 원전 1기를 짓는 공사에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프랑스국영전력회사(EDF)가 입찰에 나선 상황이다. 공급사는 내년 3월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