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새로 쓰는 1인분의 정의

입력
2023.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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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갔을 때, 자주 쓰는 용어 중 하나가 바로 '1인분'일 것이다. 한 사람에게 적당한 정량을 뜻하는 말인데, 이 1인분이라는 단어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에게는 다소 다른 뉘앙스를 갖고 있다고 한다. 기존 통념은 '1인' 그러면, 개인주의 혹은 이기주의로 많이 생각했는데, MZ세대들은 '덜 해도 안 되지만, 더 해도 억울하다'는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수가 참여하는 전략형 게임에서 1인이 제 역할을 못 하면, 팀의 성과에 영향을 주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데, 이제 '1인분' 개념은 젊은이들의 새로운 인생관을 보여주는 단어가 되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생각하는 '1인분'은 '독립적인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했을 경우에 받는 대가'라고 한다. 제 역할을 못 해서 남들에게 부담을 줘서도 안 될 뿐 아니라, 다른 1인보다 더 많이 하는 것 또한 '공정'의 개념에서 억울한 것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인분만 하자'라는 태도가 사회초년생들의 디폴트 값이라고 한다. 그래서, 1인분에 따라붙는 동사는 '(1인분) 주세요'가 아니라, '(1인분의 몫을) 해내다'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즉, 1인분을 해내는 사람이야말로, 온전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당연히 1인 가구가 대세인 우리의 현실과 직접 연계돼 있다. 1인도 온전한 가구라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보니, 지금까지 흔히 임시적 거처 형태를 가진 혼자 사는 사람을 '자취생'이라 부르던 이미지는 이제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독립 가구로 이해되는 것이다. 1인이라고 해서 대충 간편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잘'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을 갖추고 사는 것이 현재 소비시장에서의 주된 흐름인 것이다.

어찌 보면, 내 역할을 당당히 해 낸다는 것이 전제돼 있으니, 사회구성원으로서 나쁘지 않은 자세라고 하겠다. 필자는 달라진 1인분의 개념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활동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우리가 사회구성원으로 살면서, 삶의 토대인 지구와 인류를 대상으로 제대로 1인분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가? 지금까지 해 왔듯, '1인분 주세요' 하는 시각을 견지해 왔을 뿐,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온전한 1인분으로서의 역할을 해 왔는가 말이다. 넷제로 2050이라는 인류의 염원은 기존 세대들이 환경생태계에서 제대로 된 1인분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회(S)의 관점에서 우리는 각자의 권리만 주장해 왔을 뿐, 상대방과 동료를 고려한 독립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 왔는가 말이다. 1인분으로서 임시적 자취생이 아니라면, 주체적인 삶을 누리는 독립 구성원으로서 '자립'의 의미를 다해야 할 것이다.

한 가지만 더 살펴보자. 1인 가구에서 사라지는 제품 대부분은 옷걸이, 서랍장, 장롱 같은 가구라고 한다. 대신 '싱글' 방으로 들어오는 제품은 증가율 기준으로 아이패드, 프로젝터, 로봇청소기, 가습기 순이라고 한다. 순위는 좀 떨어지지만 반려 식물도 상당하다고 한다. 분석해보면, 각자 소비 욕구를 반영하여, 삶의 질(S)에 관련되는 콘텐츠 기기, 쾌적한 환경(E)을 위한 가전 및 식물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1인 가구도 자신의 생태계를 위해 독립적 사회 구성원으로서 E와 S를 챙기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자립을 이해하는 지구인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ESG 측면의 1인분이 대체 뭔지 곰곰이 고민해 봐야겠다. 그리고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제대로 된 1인분을 해 내는 것, 그것이 MZ세대의 '1인분'이 던지는 ESG적 함의가 아닐까 한다.


나석권 SK사회적가치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