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군의 '봄철 대반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러시아군이 9년 전 우크라이나로부터 빼앗은 크림반도 사수를 위해 전력을 쏟고 있는 정황이 위성사진으로 확인됐다. 수 킬로미터(㎞)씩 이어지는 1.5m 깊이의 참호 지대만 10곳 이상 만드는 등 철저한 방어선을 구축한 것이다. 현재 최대 격전지는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 지역이지만, 향후 전세가 어떻게 전개되든 '크림반도 점령'만큼은 유지하겠다는 포석인 것으로 풀이된다.
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공개한 미 상업위성업체 '맥사 테크놀로지'의 위성사진을 보면, 러시아군은 최근 크림반도 주요 군사 요충지에서 '요새화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핵심 지역은 크림반도 북부 페레코프와 메드베디우카로, 해당 사진에는 두 곳을 동서로 잇는 참호선이 형성되고 있다는 게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러시아군이 두 지역에 공을 들이는 건 우크라이나 본토에서 크림반도로 진입할 수 있는 '유이한' 육로 관문이기 때문이다. 크림반도의 핵심 전술도로인 M17(페레코프)·18(메드베디우카)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특히 페레코프는 진입로가 좁은 탓에 점령군으로선 방어에도 매우 용이하다.
러시아군은 이들 지역에 몇 겹씩 길게 참호를 판 것은 물론, 인근에 탱크와 견인포 등도 대거 배치했다. 일부 참호는 전차나 장갑차도 빠질 만한 크기로 팠다. 게다가 전차의 전술 이동도 막기 위해 '용의 이빨'(Dragon's Teeth)로 불리는 콘크리트 장애물도 설치했다. 우크라이나군의 진입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전략이다.
러시아군은 크림반도 서부 해안의 비티노 지역에도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대부분 전력이 육군이지만, 최근 서방의 지원에 힘입어 해군력을 키우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군은 미국에서 경비정 58척, 영국 등에서 대잠 초계정을 공급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이 아니다. WP는 "러시아군은 얼어붙은 땅에서도 작업할 수 있는 소련 시대 굴착기인 BTM-3까지 동원하고, 지역민들에게 90달러의 일당도 지급하면서 참호를 계속 파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 수성에 혈안인 건 이곳이 '성지'와도 같은 탓이다. 러시아의 군사분석가 이안 마트베예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크림반도는 '신성한 암소'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 절대로 탈환되어선 안 된다는 의미다.
방어선도 꽤 탄탄할 가능성이 크다. 군사전문가 스티브 대너는 WP에 "크림반도 북쪽 요새를 뚫으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 장비가 필요할 것"이라며 "러시아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군을 막았던 쿠르스크 요새만큼 튼튼한 방어 태세를 갖춘 것 같다"고 평가했다. 마트베예프도 "크림반도 방어를 위해 러시아 군 병력은 언제든 충원될 수 있는 구조"라고 짚었다.
반대로 러시아의 조바심이 엿보인다는 분석도 있다. 우크라이나 국립전략연구소의 미콜라 비에리스코우 연구원은 "크림반도의 요새화는 러시아의 두려움을 잘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