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양곡법 '비토'로 공 다시 국회로... 민주당, 거부권 무력화 가능할까

입력
2023.04.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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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안 의결 시 찬성 200명 필요...야권 단독 처리 어려워
민주당 "절박한 농심 짓밟아", 국민의힘 "거부권 불가피"


윤석열 대통령이 4일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서 공은 다시 국회로 넘어왔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의 재의(再議) 요구가 있을 경우 국회는 해당 개정안을 재의에 부쳐야 한다. 구체적으로 소관 상임위원회(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가 먼저 대통령의 재의 요구를 접수하고, 이후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의 건'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이후 표결(무기명)에서 의결될 경우 재의안은 곧바로 법률로 확정된다. 재의결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재의안 의결 시 200명 이상 찬성표 필요... 야권 단독처리 어려워

단, 재의 법안은 의결정족수의 문턱이 일반 법안보다 훨씬 높다. 국회 본회의에서 일반 법안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되는 데 비해, 재의안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된다.

현 재적의원 299명이 전원 국회 본회의에 출석한다고 가정하면, 재의안 의결에 200명 이상의 찬성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의원수(115명)를 감안하면 민주당과 정의당이 야권 표를 전부 끌어 모아도 자력으로 재의안을 의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민주당은 실현 가능성과 별도로 본회의 재표결을 비롯한 절차는 끝까지 밟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정부로부터 재의 요구가 이송되면 그 절차에 따라 재표결에 임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독선적 통치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이 얼마나 '용산출장소'로 전락한 거수기인지 국민과 농민들과 함께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재의결이 안 되더라도 '민생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불통 대통령과 거수기 여당' 이미지를 계속 부각해 나쁠 것이 없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다만 재의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은 김진표 국회의장의 의중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국회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재의안의 본회의 상정은 의무라는 해석과, 의장 재량이라는 해석이 엇갈린다.


민주당 "절박한 농심 짓밟아", 국민의힘 "문제 법에 거부권 불가피"

이날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마자 민주당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여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박 원내대표는 회견에서 “절박한 농심을 짓밟고 민생을 챙기란 국민 요구를 깡그리 무시했다”며 “윤 대통령이 칼날처럼 휘두른 1호 거부권은 입법부인 국회를 겁박해 통법부로 전락시키려는 입법권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양곡관리법은 폭락하는 국산 곡물가 속에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라며 "매우 유감"이라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거부권 행사는 불가피했다는 논리를 폈다. 김기현 대표는 “민주당이 밀어붙이려는 양곡관리법은 궁극적으로 농민들을 더욱 어렵게 할 농가파탄법”이라며 “농업 경쟁력 저하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 명약관화한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헌법에 보장된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 엄호했다.

김미애 원내대변인도 논평에서 “민주당의 현재 입법 폭주는 대선 불복이자 사실상 문재인 정권 연장 기도”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불통 대통령' 프레임을 '대선 불복' 프레임으로 맞받은 셈이다.

이성택 기자
우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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