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4일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헌법 제53조에 따른 대통령 고유 권한으로,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 이후 7년 만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농업생산성을 높이고 농가소득을 높이려는 정부의 농정 목표에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이로써 지난달 23일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법 개정안은 다시 국회로 넘어갔다.
대통령 거부권은 국회 입법권에 대한 행정부의 예외적 견제장치다. 이 때문에 한층 더 격렬한 여야 충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쌀값 정상화법’을 거부해 국민 뜻을 무시한 윤 대통령을 규탄한다”며 “농민을 배신한 정황근 농림축산식품장관은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한덕수 총리에게 ‘탄핵’ ‘양아치’를 언급했던 민주당은 이날도 “국민이 대통령에 거부권을 행사할 차례”라고 극단적 언사를 입에 올렸다. 법안이 재의결되려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해 가결은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향후에도 다수당인 민주당이 밀어붙일 쟁점법안이 수두룩해 국회 파행은 불가피해 보인다. 간호법 제정안의 경우 간호계를 제외한 나머지 보건의료계가 반대하는 데다, 방송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개정안도 국민의힘이 반대하고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할 태세다. ‘50억 클럽’과 ‘김건희 여사 특검’ 등 ‘쌍특검’ 법안도 신속처리안건 지정을 추진할 분위기다. 대통령 거부권이 등장하는 ‘협치 실종’ 사태는 정치권 스스로 무능과 무책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경제와 안보가 위중한 지금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여야는 입법폭주와 거부권으로 치고받는 대신 민생 앞에 타협하고 윈윈하는 필사의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