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양곡법에 "포퓰리즘" 거부권 행사... 민주당 "국민 뜻 무시" 반발

입력
2023.04.0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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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쌀 강제매수법" vs "남는 쌀 방지법" 설전

윤석열 대통령이 4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양곡법) 개정안에 대해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비판하며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민주당은 즉각 “쌀값 정상화법을 거부해 국민의 뜻을 무시한 윤 대통령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반발하고 나서 정국이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초과 생산된 쌀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재의요구안을 심의, 의결했다. 회의 직후에는 곧바로 재가했다.

지난해 5월 취임한 윤 대통령의 1호 거부권이다. 대통령의 거부권으로는 2016년 5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상임위원회의 상시 청문회 개최’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행사한 지 7년 만이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거부권 행사 이유를 조목조목 밝혔다. 윤 대통령은 우선 “그간 정부는 이번 법안의 부작용에 대해 국회에 지속적으로 설명해 왔습니다만 제대로 된 토론 없이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민주당의 입법 강행을 지적했다.

특히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포퓰리즘 법안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윤 대통령은 “이 법안은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정부의 농정 목표에도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들여서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매수법’”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 법안이 오히려 궁극적으로 쌀의 시장가격을 떨어뜨리고 농가 소득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것으로 우려된다”고도 했다. 아울러 40개 농업인 단체의 반대 등 농민 현장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란 사실도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정부의 쌀 의무매입을 과거 문재인 정부 역시 반대했던 사실을 거론하기도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019년 쌀 의무매입법(양곡법)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하자 당시 문재인 정부가 반대했다. 문재인 정부가 왜 지금 우리처럼 이 법안을 반대했겠느냐"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도 반대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취지다.

이로써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다시 국회로 돌아가 재의 절차를 밟게 됐다. 하지만 재의결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요건으로 하기 때문에 개정안은 폐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재적의원(299명) 중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이 115명으로, 전체 3분의 1을 훌쩍 넘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일단 재의결 추진에 나서는 한편 강도 높은 여론전을 예고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과 논의를 해봐야겠지만 당연히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당이 제안한 이 법은 정부가 적극적인 쌀 생산 조정을 통해 남는 쌀이 없게 하려는 ‘남는 쌀 방지법’”이라며 “윤 대통령이 오늘 쌀값 정상화법을 거부하면서 정부는 필요하면 언제든지 쌀값을 폭락시켜 농민들을 희생시킬 수 있게 됐다”고 반발했다.


김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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