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A씨는 코로나19 이후에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매출에 눈물을 머금고 가게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알아보니 인테리어 원상복구 등에 드는 비용만 3,000만 원. 이미 신용대출과 각종 정책자금으로 여러 건의 채무를 지고 있어 추가 대출이 쉽지 않고, 사업을 완전히 접자니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해 고민에 빠졌다.
지난달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신용점수 낮추는 방법’이 공유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저금리 대출 지원을 받기 위해서다. 개인신용 평점이 744점 이하인 소상공인에게 연 2% 고정금리로 최대 3,000만 원까지 빌려주는 정책이다. 부랴부랴 현금서비스, 카드론을 받았다는 후기들 속 “일부러 신용점수까지 끌어내려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는 자조가 터져 나왔다.
국내 자영업자들의 대출(사업자대출과 가계대출) 규모가 1,000조 원을 넘어섰다. 특히 빚을 낸 자영업자 10명 중 6명은 3개 이상(기관 및 상품)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로, 부실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일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영업자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은 1,019조8,000억 원으로 추산됐다. 자영업자 대출액은 지난해 3분기(1,014조2,000억 원) 처음 1,000조 원을 돌파한 뒤 계속 증가해 최대 기록을 다시 썼다.
더 위험한 건 전체 자영업 대출자 중 56.4%에 해당하는 173만 명이 다중채무자라는 점이다. 추가 대출을 받기 어려운 한계 상황에 몰린 셈이라 대표적인 ‘약한 고리’로 지목된다. 대출액 기준으로는 다중채무자 대출이 전체의 70.6%(720조3,000억 원)나 차지한다. 지난해 말 현재 이들의 1인당 평균 대출액은 4억2,0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출금리가 오르면 다중채무자의 이자 부담은 급격하게 불어난다. 한은은 금리가 0.25%포인트, 1.5%포인트 인상될 때 자영업 다중채무자의 1인당 연이자가 각각 76만 원, 454만 원 늘어나게 된다고 시산했다. 2021년 8월부터 1년 반에 걸쳐 기준금리가 3%포인트 인상되는 동안 대출금리도 똑같이 올랐다고 가정하면, 자영업 다중채무자 한 사람의 연이자는 평균 908만 원(454만원×2)이나 뛰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연체율도 높아지는 추세다.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9월 평균 0.18%에서 연말 0.24%로 0.06%포인트 올랐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정부의 적극적인 금융지원 조치로 내내 0.15% 수준을 유지했지만 금리 인상 여파가 본격화하면서 상승세로 전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