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사랑에 빠진 자는 말릴 수 없다"

입력
2023.04.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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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벤저민 프랭클린의 편지

벤저민 프랭클린(1706~ 1790)은 조지 워싱턴보다 26세, 토머스 제퍼슨보다는 37세 많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였다. 식민지 보스턴에서 태어나 계몽사상가 겸 출판인으로, 영국 왕립학회 회원 과학자로, 독립전쟁 시기 프랑스의 군사 원조를 얻어낸 외교관 겸 정치인으로 활약한 그는 제퍼슨과 더불어 독립선언문 초안을 짓고, 제헌헌법 제정에 핵심적으로 관여했다. 독립 후 그는 일체의 공직을 ‘아들뻘’들에게 양보한 채 조용히 만년을 보내다 필라델피아 자신의 집에서 흉막염으로 별세했다. '건국의 아버지'들의 아버지로 불리던 그는 만년의 자서전에 “자신과 사랑에 빠진 자는 말릴 수 없다”는 멋진 말을 남겼다.

영국의 식민지 징세 강화는 당시 국왕 조지 3세와 총리 프레더릭 노스(Frederick Norhth)의 합작품이었다. 영국은 세계 식민지 쟁탈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설탕법, 인지세법 등으로 식민지를 쥐어짰다. 그 결과가 보스턴차사건(1773년)과 독립전쟁(1775~83)이었다.

보스턴차사건 직후인 1774년 4월 5일, 프랭클린은 노스 총리에게 한 통의 공개 편지를 보냈다. 북미 전역을 휘어잡을 군인 총독을 파견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배심원 재판 따윈 무시하고 군사법원으로 찍어 누르라는 것. 스무 명을 모아봐야 영국인 한 명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타락한 양키놈들’에게 세금을 왕창 짜내고, 빈털터리가 되면 경쟁국 스페인에 팔아 치우라고 제안하는 내용.

휘그당(자유당)원들의 아지트였던 ‘스미르나(Smyrna) 커피하우스’에서 쓴 편지라는 사실까지 명기해 토리당(보수당) 정치인 노스에게 보낸 그의 편지는 당연히 집권당의 오만에 대한 통렬한 풍자였다. 하지만 노스는 얼마 뒤 프랭클린의 조언대로 미국에 군인 총독(Thomas Gage)을 파견했고, 그 대가로 자신의 직위와 북미 식민지 전부를 잃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