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생존 학생 첫 에세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 낼게요”

입력
2023.04.03 17:00
22면
단원고 유가영씨 에세이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출간
생존자 첫 책, 고통과 회복의 과정 녹여내

“책을 쓰면서 예전 일을 떠올리는 게 조금 힘들기는 했어요. 그래도 쓰다 보니 제가 소질이 있는지 잘 쓰게 되더라고요.(웃음)”

운명은 그를 고통 속에 던졌지만 그는 스스로를 구해냈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 유가영(26)씨. 아픈 기억을 헤쳐내고 어느덧 농담을 던질 정도로 밝아진 그가 참사 이후의 삶을 담은 에세이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다른 출판)를 펴냈다. 전화로 만난 유씨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니 좋은 순간이 오더라”며 “지금 힘든 순간을 겪는 이들이 글을 보며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씨는 2014년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 학생이었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 ‘나올 사람은 나오라’는 누군가의 말에 이끌려 헬기로 탈출한다. 이후 뜻밖의 사고로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공포, 집중력 저하, 우울증과 불면증 등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렸다. 그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나와 그래도 끝까지 살아야 한다는 나, 이 두 자아가 싸웠고 여러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일상의 버팀목이 되어준 건 주변 사람들이었다.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은 단원고 스쿨닥터 교사, “세상 천지에 우리만 힘든 게 아닐 거야”라며 아픔을 나눈 단원고 생존 학생들, “해 줄 수 있는 게 태워주는 것밖에 없다”며 요금을 거절한 택시 기사 등이 그를 지탱했다. 그렇게 성인이 되며 “단단히 세웠던 벽을 허물고 세상을 바라봐야 할 때가 왔다는 걸” 깨달았다.

여느 대학생처럼 해외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쿠팡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단원고 생존 학생들과 ‘운디드 힐러’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어 재난 피해자를 돕는 활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트라우마를 알려주는 인형극을 하고 지난해 벌어진 울진 산불 때 피해 어르신들을 만나 위로를 나눴다. 지금도 불쑥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만 “그 괴로움을 극복하지는 못해도 딛고 일어날 힘은 생겼다”고 말했다. 세월호 생존자가 책을 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지난해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고는 참담함을 느꼈다. ‘놀러 갔다 사고 난 게 자랑이냐’는 비방과 혐오, 보호받지 못하는 피해자와 유가족들, 책임을 미루는 어른들 모습 등이 세월호 참사 때와 똑같았다. 유씨는 “사회는 참사에 관한 얘기를 오래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며 “또 다른 참사를 막고 나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참사 수습과 재발 방지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의 꿈은 비영리단체(NGO) 재난구호 활동가다. 그는 “세월호 생존 학생을 ‘아직도 아픈 아이들’이 아니라 그런 참사를 겪고도 성장해서 자신이 할 일을 찾아 사회로 나온 사람들로 보아 주었으면 좋겠다”며 “구호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사람들의 어려움을 듣고 위로를 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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