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마트에서 장을 보던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귀에 익은 '이마트송'이 다채롭게 변신하고 있다.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이마트가 아티스트들과 손잡고 모던록, 재즈, 퓨전국악, 오케스트라 버전의 노래를 틀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는 2015년 인터넷 '밈(meme·유행 콘텐츠)'으로 등극한 리믹스 버전도 있다. 유튜버 'Sake L'이 이 CM송을 다섯 배 빠르게 감아 5시간 연속 재생하는 동영상을 업로드한 후 지금까지 조회수가 1,400만 회를 넘으며 인기를 끌었다. 이마트 측은 이번에 다양한 버전의 이마트송을 공개하며 이 유튜버에게 이마트 인스타그램에 메시지(DM)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이 중 "초등학생 때 엄마 아빠랑 이마트 가서 '짜요짜요' 사 먹고 집에 갈 때 듣던 노래"라는 반응처럼 대형마트에서 가족과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내용이 많다.
이마트(1993년), 롯데마트(1998년), 홈플러스(1999년) 등 국내 대형마트 빅3는 모두 1990년대에 1호점을 열었고, 2000년대 들어 전국으로 뻗어 나갔다. 이들 대형마트는 30년 동안 ①연 매출 30%씩 성장한 첫 10년 ②연 7, 8%씩 성장한 두 번째 10년 ③마이너스 성장세의 10년을 거쳐왔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이경필(32)씨는 어릴 적 LG마트(현 롯데마트)를 처음 가본 순간 '쇼핑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이씨는 "시장에서는 물건을 살 때마다 들고 다녀야 해서 무겁고 날씨의 변화에 따라 춥고 더웠는데 마트는 바깥 날씨 영향을 받지 않고 카트가 있다는 것이 가장 달랐다"며 "엄마를 따라 시장을 가진 않았지만 마트에는 먹고 싶은 과자를 고르기 위해 꼭 따라나섰다"고 말했다.
2000년대 제주에 살았던 이란화(54)씨는 2003년 제주시에 생긴 이마트 신제주점을 당시 초등학생, 유치원 자녀들 손잡고 다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씨는 "일요일 저녁 지하 1층 식품 코너는 인산인해였다"며 "보통 내가 생선이나 육류 코너에 있으면 딸은 우유를 가지고 오곤 했는데 이날 길이 엇갈려 아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떠올렸다. 그는 이어 "딸이 휴대폰이 없어 아이를 잃어버리면 꼼짝없이 미아 찾기 방송을 해야 했다"며 "그때는 '아이를 찾습니다'는 방송을 많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허지욱(25)씨가 기억하는 대형마트의 상징은 시식 코너다. 광주의 킴스마트를 주로 갔다는 그는 "마트 입구에서부터 풍기던 강렬한 빵 냄새"를 떠올렸다. 식품 매장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시식코너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는 "시식 코너 아주머니들이 먹어 보라던 떡갈비, 만두, 떡볶이, 두유 등을 절대 거절하지 않고 다 먹어 봤다"며 "부모님이 장 보실 동안 혼자서 시식 코너를 돌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전북 군산이 고향인 배유지(23)씨는 2007년에 롯데마트가 생기던 시절 동네 분위기를 전했다. 군산 시내 중심가에 생긴 최신 마트가 친구들·친구 엄마들이 모이는 사랑방 역할을 했다. 그는 "푸드코트에 여러 테이블을 붙여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짜장면이나 돈가스를 먹으면서 놀고 어머니들끼리 앉아 얘기하곤 했다"며 "밥 먹고 장도 보고 친구네 집에 놀러 가는 일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배씨는 어린 시절 대형마트를 떠올리면 "약간은 설레고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이 바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했기 때문에 주말에 엄마 아빠와 마트 갈 때가 참 설렜다"고 말했다.
20년째 이마트에서 일한 우만호(53) 이마트 창동점장은 대형마트의 전성기를 생생히 기억한다. 그는 "2004년 전북 전주에 딱 하나 있던 대형마트인 이마트 전주점에서 지원팀장으로 일할 때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마트체험을 진행했다"며 "유치원 다니던 우리 애도 왔는데 '우리 아빠가 이마트 다닌다!'고 자랑스러워해서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던 곳으로 대형마트를 기억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대형마트를 향하는 발걸음이 뜸해졌다. 식재료부터 옷, 전자기기까지 모든 품목의 '원스톱 쇼핑'이 가능했던 장점도 온라인 쇼핑의 편리함을 따라가기 어렵다.
서울 종로구에서 자취 생활을 하는 이지현(24)씨는 "MT 가기 전 술·과자를 살 때, 최근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와인 사러 롯데마트에 갔을 때 말고는 대형마트를 갈 일이 없다"며 "사실 동네에 대형마트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①동네 마트에서 식재료를, ②최근 유료 회원 가입까지 한 쿠팡에서 △라면 △두루마리 휴지 △티슈 △생수를, ③편의점에서 각종 디저트를 구입한다. 이씨는 "쇼핑할 때 가격보다는 '거리가 얼마나 가깝나'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3년은 대형마트에 특히 치명적이었다. 핵심은 편리한 배송이다. 이란화씨는 코로나19 유행 후 이마트 앱으로는 기본 식료품을, 마켓컬리 앱으로는 아이들 간식 등을 격일로 새벽 배송으로 주문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이제 연 2, 3회 창고형 할인매장인 코스트코만 간다. 가족의 쇼핑문화도 바뀌었다. 이씨는 "매일 아침 남편이 출근하면서 현관문 앞에 배달 온 식자재들을 안으로 들여놓는다"며 "대학생인 딸이 어릴 때에는 저녁때마다 마트에 가자고 졸랐는데, 지금 중3 아들은 매일 저녁 안방에서 내 옆에 붙어 컬리 앱을 함께 보면서 장바구니에 넣을 간식을 고른다"고 말했다.
평소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많이 했다는 주부 권모(43)씨는 지난해 출산을 하면서 "편리한 배송의 위대함에 눈을 떴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말 쿠팡 유료 멤버십에 가입했다는 그는 "새벽 1시에 아기에게 수유하면서 핸드폰으로 쇼핑을 하는데 주로 모유 수유 팩이나 뽁뽁이 등 갑자기 떨어져 필요한 비식품 물건을 주문한다"며 "빠르면 8시간 지난 오전 9시 늦어도 오후에는 배송되고 바로 반품도 가능해 지금은 다른 쇼핑앱에서 배송이 이틀 걸리는 것도 늦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30년②]"휴일 월요일로 바뀌고 주말에 딱 한 번 쉬었죠" 10년 전으로 돌아간 캐셔의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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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30년③]편의점에도 밀려...의무휴업일 규제 완화·공간 뒤집기로 생존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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