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 앞에 서 있지 마세요" "입장문 발표 후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요새 대한축구협회를 보면 '불통'이란 뜻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는 듯하다. 지난달 31일엔 최절정의 '불통 아이콘' 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정몽규 축구협회장을 비롯한 이사진은 임시 이사회를 열고, 우루과이 친선경기(3월 28일)를 코앞에 두고 ‘기습 발표’한 내용을 전면 철회했다. 승부조작 가담자 48명을 포함해 징계를 받은 전·현직 선수, 지도자, 심판 등 100명을 사면하기로 의결했다가 거센 국민적 비난에 부딪히자 무효화한 것이다.
이 과정도 ‘기습’의 연속이었다. 당시 임시 이사회 시작 시간은 오후 4시. 축구협회는 불과 1시간여 전에 ‘기습 문자’를 보내 "정 회장이 입장 발표를 할 것"이라고 알렸다. 40여 명의 취재진이 몰리자 축구협회는 ‘회의실 문 앞에 대기하지도, 입장문 발표 후엔 질문도 하지 말라’며 일방 통보했다. 언론은 필요의 대상일 뿐이라는 의미로 들렸다. 3분여간 입장문을 읽은 정 회장은 카메라 앞에서 허리를 숙이더니 황급히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지난달 24일 울산에서 열린 축구대표팀과 콜롬비아의 친선경기를 앞두고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23일 기자회견 일정을 전날 오후 7시가 넘어서야 출입기자들에게 통보했다. 언론들은 울산행 기차와 숙소를 구하기 위해 애를 먹었다.
사소한 일정 공유조차 '일방통행'하는 협회를 이해해 달라며 사과하는 건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스포츠정신 자체를 부정하는 승부조작 가담자 등을 여론 수렴도 없이 사면 조치하겠다고 기습 발표하더니, 거센 반발에 밀려 황급히 철회해 버리는 '아니면 말고' 식의 행정을 어떻게 봐야 할까.
무엇보다 상급기관인 대한체육회 규정을 자의적으로 유권 해석한 것은 이번 사태의 정점을 찍은 행태였다. 2020년 개정된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 계정에 적시된 '4개 비위 행위에 대해 감경 불가' 방침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4개 비위에는 '승부조작'도 명시돼 있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해선 정 회장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2011년 승부조작사건 당시 정 회장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수장인 총재였으며, 2017년부터는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런데도 체육회 규정과 상반된 내용으로 사면 조치를 추진한 건 선뜻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정 회장의 '4선 연임' 추진 의혹까지 제기된다. 2013년부터 10년째 장기 집권 중인 정 회장이 4선 연임을 위한 포석으로 축구계 인심을 얻으려다 자승자박에 빠졌다는 정치적 해석이다. '사면 예정이었던 100명 중 정 회장의 우호 세력도 다수 있었을 것'이라는 '억측'까지 나온다.
모든 걸 차치하더라도, 현재 역대 최고 수준의 축구대표팀을 끌고 가기엔 축구협회의 격이 매우 떨어진다는 혹평은 피해갈 수 없게 됐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