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가 등장하기 전까지 적어도 2년 동안 테크업계 최대 화두는 메타버스(Metaverse)였다. 팬데믹으로 대면활동이 중단되면서 '현실과 가상세계의 결합'을 뜻하는 메타버스 시대가 금방 열리는 듯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한 시대를 주름잡은 페이스북은 메타버스에 집중하겠다며 2021년 아예 회사 이름을 '메타'로 바꾸기까지 했다.
메타버스에 대한 테크업계의 열정은 그러나 최근 급격히 식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2월 실적발표에서 AI를 28번이나 말한 반면 메타버스는 단 8번만 언급한 게 대표적이다. 앞다퉈 메타버스 사업을 키우던 빅테크(주요 기술기업)들은 조용히 메타버스 사업을 접거나 축소하고 있다. "메타버스가 냉혹한 현실에 직면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JS)은 평했다.
메타버스의 쇠락은 최근 월트디즈니컴퍼니가 메타버스 사업을 아예 접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더 분명해졌다. 지난달 디즈니는 작년 2월 신설한 메타버스 사업부 소속 직원 약 50명을 전부 해고하고 조직을 없앴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2017년 인수한 메타버스 플랫폼 알트스페이스 가상현실(VR) 서비스를 지난달 종료했다.
지금껏 메타버스에 360억 달러(약 47조 원)가량을 쏟아부은 메타는 메타버스를 여전히 회사의 역점사업으로 삼고는 있지만, AI 후순위로 밀어내는 분위기다. 지난해 1만1,000명을 해고한 메타는 지난달 1만 명을 더 해고한다고 발표했는데, 추가 해고 대상에는 메타버스 사업부 소속 인원들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메타버스 낙관론자들은 애플이 6월 혼합현실(MR) 헤드셋을 출시하면 메타버스에 대한 이용자들의 관심도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본다. 그러나 애플 분석 전문가인 대만의 궈밍치 애널리스트는 애플 내부에서 메타버스 시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5년 넘게 준비해 온 헤드셋 공개가 6월에서 더 미뤄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메타버스의 이런 느린 발전 속도는 날마다 새로운 성과가 등장하는 생성형 AI의 눈부신 성장 속도와 매우 대비되는 부분이다.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진 것은 △이용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끼게 할 만한 킬러 콘텐츠가 적고 △메타버스를 구현할 기기 등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것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메타버스는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기대를 받았으나 현실은 수년째 게임, 교육, 패션 등 일부 분야에서만 제한적으로 활용된다. 메타버스를 구현하는 가상현실·증강현실(AR) 헤드셋 같은 필수 도구가 여전히 무겁고 둔탁하다는 점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경과 거의 비슷한 VR·AR 기기도 나오고 있지만, 장시간 착용 시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게 아직 적지 않다. 단시간 대중화한 스마트폰처럼, 가볍고 작고 적당한 가격대로 나오지 않는다면 메타버스 혁명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물론 메타버스 발전이 생각만큼 빨리 진행되지 않는 것일 뿐 메타버스 시대가 조만간 도래할 것이란 믿음은 여전하다. 메타버스로만 할 수 있는 게 분명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주나 해저 여행은 현실에선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거의 불가능하지만 메타버스 시대에선 누구든 경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