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떠올리던 장항준 감독은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었다"고 했다. 영어 수학 미술은 물론 악기 운동까지 골고루 못하는 학생이었단다. 그럼에도 그는 낙천적인 삶의 태도를 유지하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신이 내린 꿀 팔자'라는 수식어의 소유자인 장 감독은 '리바운드'를 선보이기까지 다양한 모험을 거쳤다.
그는 3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영화 '리바운드'에 대한 애정을 내비쳤다. '리바운드'는 2012년 전국 고교농구대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최약체 농구부의 신임 코치와 6명의 선수가 쉼 없이 달려간 8일간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농구 명문이었던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린 부산중앙고에 부임한 고교농구 MVP 출신 신임 코치 강양현과 6명의 선수가 2012년 전국 고교농구대회에서 일궈냈던 감동이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아내 김은희 작가는 '리바운드' 편집본을 보고 "오빠, 오빠의 대표작이 될 거야"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이 작품의 각본에도 참여했다. 그는 일찍이 장 감독이 '리바운드' 연출을 맡길 원했다. 장 감독이 드라마틱한 실화에 반했을 때 "오빠가 이 영화를 한다고? 내가 한 번 보면 안 될까?"라고 물었던 김 작가는 곧 "이건 오빠가 꼭 해야 해"라고 말했다. 더불어 "내가 이 작품을 고쳐보면 안 될까?"라고 질문했다. 그 순간 장 감독의 머릿속에는 '웬 떡이냐'라는 생각이 스쳤다. 두 사람은 작품 속 사건을 다시 취재하고 강양현 코치를 만나 자료 조사를 했다.
목표는 최대한 현실과 가깝게 만드는 것이었다. 장 감독은 "잘못하면 너무 신파조가 될 수 있지 않나. 촬영할 때도 배우들에게 '아무도 울면 안 된다. 관객이 울기 전까지 울면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 선수들도 울지 않았다더라"고 설명했다. 투자가 쉽게 진행되지 않아 한동안 작품이 '엎어진 상태'가 되기도 했지만 '리바운드'는 결국 세상 빛을 보게 됐다. 스태프들이 다시 모였고 캐스팅하고 싶었던 안재홍은 3일 만에 "작품을 제게 주셔서 감사하다"면서 연락을 줬다. 안재홍은 일주일 만에 10kg을 증량해 강 코치와의 싱크로율을 높였다.
장 감독은 리얼리티를 강조했다. 그는 "당시 있었던 광고판, 당시 쓰던 공, 당시 신었던 신발, 당시 소화했던 착장들을 구현하기 위해 신경 썼다"고 밝혔다. 부산중앙고에서의 촬영을 꼭 진행하고 싶었는데 장 감독의 바람은 결국 이뤄졌다. 그는 "우리가 촬영하는 동안 농구부가 자리를 비켜줬다"면서 기쁜 마음을 내비쳤다. 길거리농구 장면 등과 관련해서는 당시의 사진을 구하는 것이 연출부의 가장 큰 과제였다. 장 감독은 "부산 로케이션 촬영을 할 때 대부분 실제 장소에서 찍으려고 했다"고 밝혔다.
시사회를 통해 미리 '리바운드'를 관람한 부산 관객들은 "진짜 부산이네"라고 말했다. 장 감독은 "서울 사람들이 아는 부산은 대부분 해운대, 광안리 등이지 않나. 그런데 부산 사람들에게 그곳은 삶의 터전이 아니다. 외국인들이 명동만 보고 서울을 다 봤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쌍문동 등도 있고 사람들은 거기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년들이 어떤 골목, 어떤 지붕 아래에서 먹고 생활했는지를 담아내는 게 내게 연출적으로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덧붙였다.
장 감독은 '리바운드'를 찍으면서 모험을 시도했다. 그중 하나는 많은 신인 배우들의 캐스팅이다. 장 감독은 "'선수들이 많이 유명해서는 안 된다.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산중앙고 선수들이 아닌 배우로 보일까 봐 걱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과감한 캐스팅이 모험이라고 느꼈다.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유명한 배우가 고려 요소이지 않나"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장 감독은 '당시 선수들의 리얼리티와 진정성을 담을 수 있다면 관객이 배우 얼굴을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다.
출연진의 농구 실력도 중요했다. 장 감독은 "500명 가까이 농구 오디션을 봤다. 대한민국의 젊은 배우들을 다 본 듯하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놀라운 점은 극을 이끈 배우 중 한 명인 이신영이 농구 경험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장 감독은 "신영씨는 기준에 안 맞는 배우였지만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 배우랑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순박함과 정직함이 있었다. 리딩을 시켜봤더니 그것도 잘 했다. 신인이지만 담백하게 연기하는 모습에 '이렇게 해야지' 싶었다"고 말했다. 이신영은 농구 레슨을 받고 개인 연습을 하며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장 감독은 고마운 마음을 품게 됐다. 그는 이신영을 '노력의 결정체'라는 말로 설명했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인기는 장항준의 수식어 중 하나인 '될놈될(될 사람은 된다)'을 증명한다. 그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농구 붐이 생길 거라고 생각 못 했다. 장항준은 '될놈될'인가, 정말 신이 점지한 사람인가 같은 댓글도 봤다. 나도 그걸 보고 '그런가?' 싶었다"고 밝혔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인기 속에서 농구 영화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리바운드'를 향한 기대감도 높아지는 중이다. 장 감독은 "난 어렸을 때부터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었다. 골고루 못하는 애들이 있지 않나. 고3 때까지 영어 수학 미술 체육 악기 운동 다 못했다.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장 감독은 자신의 취향을 대중에게 선보이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게 자신 같은 직업을 가진 이들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는 "대중이 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걸 주는 거다. '요즘엔 단짠만 먹어서 모르죠? 이건 담백한 요리인데 한번 드셔보세요'라면서 현재 내 기호, 취향을 대중에게 선보여 공감을 얻는 게 중요한 덕목인 듯하다"고 했다. 장 감독은 '리바운드'가 관객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길 간절히 원하는 중이다.
'리바운드'는 다음 달 5일 극장에서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