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시험에서도 단순 암기 사라져야

입력
2023.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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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법학 교수로서 23년간 민법을 강의하면서, 법학 이외에 두 가지 능력을 추가로 가질 것을 학생들에게 요구하였다. 첫째는 한문 실력이다. 법전의 용어가 한자로 되어 있으므로 법전을 읽기 위해서는 한자 학습이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 법전의 한글화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더 이상 한자를 몰라 시험장에서 제공되는 법전을 읽지 못하는 일은 없어졌다. 둘째는 글씨이다. 법학시험에서는 많은 양의 답안을 수기로 작성해야 하는데, 글씨가 나쁜 경우 채점자가 답안을 읽기 어려워 불이익을 받을 수 있었다. 글씨가 나쁜 학생은 따로 불러서 펜글씨 교본 등을 통하여 반드시 글씨를 수정하도록 지도하였다. 나는 변호사 시험을 3번 출제하고 채점까지 하였는데, 그때마다 각양각색의 글씨를 읽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런데 내년부터 치르는 변호사 시험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답안 작성이 이루어진다. 준비 내지 예산 부족으로 유예를 주장하던 법학전문대학원 측의 반대를 무릅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강력한 의지로 제도가 신속히 시행된 것이다. 글씨가 나쁜 학생들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며, 채점자로서도 부담이 경감될 수 있어 좋다.

컴퓨터를 변호사 시험에 활용하는 현상은 '리걸테크(Legaltech)'를 법률생활에 적용하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인공지능 즉, '챗GPT(ChatGPT)' 등을 활용한 리걸테크 기술은 법률생활의 근본적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 현재 유수한 대학의 강단은 변호사 시험 학원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변호사 시험에서 최신 판례만 알면 답안을 작성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들이 나오다 보니, 수험생들은 최신 판례를 많이 소개하는 강의를 선호한다. 그런데 인공지능 기술이 결합한 리걸테크는 이미 단순한 판례 검색을 넘어 다양한 법률 문헌까지 결합하여 하나의 사건에 스스로 의견서를 완성하여 준다. 대형 로펌의 주니어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을 이미 해내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우선 변호사 시험부터 개혁되고 이에 따라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가르치는 내용도 바뀌어야 한다. 단순한 암기 위주의 학습에서 벗어나 인공지능이 작성한 내용을 검토, 평가, 수정 및 보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하여 여러 가지 개선점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시험은 '오픈북' 형태로 치러져야 한다. 책을 제공할 수도 있지만, 판례와 교과서, 주석서 등을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여 시험 시간에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넓은 시험 범위 안에서 단편적 지식을 묻기보다 좁은 시험 범위 안에서 심오한 법 논리를 묻는 문제가 출제되고, 이러한 방향으로 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 가령 민법의 경우에는 방대한 영역이 있으나, 이 중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매매계약, 임대차계약 및 도급계약을 중심으로 하여 핵심적 제도들이 결합된 제한적 영역을 시험에 출제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셋째, 현재 변호사 시험에서는 객관식, 사례형, 기록형 총 3단계로 구성되지만, 결국 판례 암기만으로도 풀 수 있는 동일한 유형의 문제를 내지 말고 4시간 동안 깊이 있는 문제로 진행되는 기록형·사례형 문제를 내야 한다. 이는 단순 암기를 지양하고 시험을 통하여 변호사에게 실제 요구되는 업무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과정이다.


이병준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