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적자 규모가 수십조 원대에 이르는 한국전력공사의 최대주주 한국산업은행에 정부가 공기업 지분 현물 출자 방식으로 석 달 사이에 1조 원을 수혈한다. 국책은행에 정책 대응 여력을 만들어 주기 위한 선제 조치라는 설명이다.
기획재정부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추가 대응 여력 확보와 설비투자 등 실물경제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산업은행에 현물 출자를 추진 중이라고 30일 밝혔다. 산은에 출자하는 현물은 4,350억 원 규모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식이다. 28일 국무회의에서 출자안이 의결됐다. 이미 지난해 12월 한 차례 5,650억 원 규모의 LH 지분을 산은에 출자한 바 있는 만큼, 산은을 대상으로 석 달여간 1조 원 규모의 현물 출자가 이뤄지는 셈이다.
산은이 정책금융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자본을 확충하려는 취지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국제결제은행(BIS) 총자본비율 등이 낮아질 경우 향후 역할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작년 말 기준 산은의 BIS 기준 총자본비율은 13.4%(최종치 기준)로, 은행권 평균(15.25%)을 밑도는 수준이다. 이번 정부 현물 출자로 산은의 총자본비율이 약 0.1%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금융당국은 보고 있다. 총자본비율 규제 하한은 10.5%(자본보전완충자본 2.5%포인트 포함)인데, 금융당국은 13% 이상을 유지하도록 권고한다.
산은의 BIS 비율 하락은 한전 손실과 무관하지 않다. 산은이 한전 지분 33%를 보유한 최대주주여서 한전의 순손실은 산은의 지분법 평가 손실로 잡힌다. 작년 한전의 순손실은 24조4,199억 원에 달했다. 강석훈 산은 회장이 작년 국정감사에서 “지분법상 한전의 1조 원 손실은 산은의 BIS 비율을 0.06%포인트 낮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정부가 전기요금 정상화를 미루고 미봉책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오지만, 산은 현물 출자와 전기료 결정은 관련이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정부는 작년 말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위기 대응 역량 확충 차원에서 산은과 한국수출입은행에 현물 출자를 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