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30일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사퇴에 따라 공백이 생긴 외교안보 라인을 빠르게 재정비했다. 조태용 신임 국가안보실장 임명 재가, 조현동 주미대사 내정 등이 사실상 동시에 이뤄졌다. 조 실장은 첫 출근을 하자마자 윤 대통령을 밀착 수행했다. 갑작스러운 외교안보 라인 교체가 4월 말 미국 국빈 방문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인도·태평양 지역 회의'를 마치고 용산 대통령실로 돌아오자마자 조 실장 임명안을 재가했다. 이후 조 실장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으로부터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업무보고를 받았다.
조 실장이 맡았던 주미대사 후임 인사도 속전속결이다. 윤 대통령은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을 주미대사로 내정하고, 미국 행정부에 신속하게 아그레망(외교사절에 대한 사전 동의)을 요청할 계획이다. 또 이날 국립외교원장에 박철희 서울대 국제학연구소장을 임명했다. 외교안보 진용을 빠르게 재정비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로 해석된다.
대통령실은 김 전 실장 사퇴로 촉발된 내부 갈등설에도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하나하나 사건으로 인사가 나는 게 아니라 큰 흐름에서 변화가 왔다"면서 "김 전 실장은 교수 출신으로 한미동맹을 우선하고 한미일 협력을 중시하는 외교 방향의 기틀을 잡았다면, 한미동맹 강화의 디테일을 가미하는 건 외교관 출신의 조 실장이 적합하다고 본 것"이라고 인사 배경을 공개적으로 설명했다.
대통령실 내부적으로는 '분위기 쇄신'에 돌입한 모습이다. 윤 대통령이 조 실장에게 맡긴 첫 과제가 '리스크 관리'로 전해졌다. 외교안보 라인의 문제가 불거진 것은 안보실 내부, 안보실과 비서실, 안보실과 외교부 간의 내부 갈등과 파벌 다툼으로 인한 불통이 원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윤 대통령이 '제3자 변제' 방식의 강제동원 해법을 내놓은 후 국내 여론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참모진 간의 불협화음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체감했다고 한다.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23분의 모두발언으로 대국민 설득전에 나섰을 당시 연설 내용의 수위를 놓고 안보실, 비서실, 외교부 간 시각차가 컸던 게 대표적이다. 결국 윤 대통령이 직접 연설 내용을 일일이 다듬었다고 한다.
조 실장이 이날 브리핑에서 "안보실을 포함해 대통령실 전 구성원들이 한마음으로, '원팀'으로 노력해 나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저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급한 것도 이 같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