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적자에 환경파괴까지... 케이블카, 욕망의 행렬

입력
2023.04.01 18:20
16면
설악산 빗장 풀리며 전국 20여 지자체 따라하기식 케이블카 추진
현행 관광 케이블카 시설물 대부분 만성 적자
설악산 사업 예정지 희귀 야생동식물 서식지 훼손 불가피
'생물 다양성의 보고’ VS '지역경제 활성화 뗄감'



‘설악산이 가능하면 우리도 가능하다!’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의 환경영향평가 조건부 통과 이후 지리산·소백산 국립공원 등 명산을 끼고 있는 지자체 20여 곳이 케이블카 사업 추진에 나서고 있다. 형평성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사업 통과가 영 불가능한 일도 아닌 상황이다. 그렇다면 과연 자연유산을 훼손하면서까지 이곳저곳에 설치할 만큼 케이블카 사업의 전망이 장밋빛일까. 설악산을 비롯해 전국에서 현재 운영 중인 주요 케이블카의 운영 현황을 살펴봤다.

지난 22~24일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를 시작으로 강원 정선 가리왕산을 거쳐 충북 제천 청풍호반, 경북 구미 금오산, 대구 팔공산, 경남 거제 파노라마, 경남 통영, 경남 사천, 경남 하동, 전북 내장산까지 총 10곳의 관광용 케이블카를 찾아갔다. 이 중 흑자를 내는 것으로 알려진 설악산 권금성과 경남 통영을 제외하고 나머지 지역의 케이블카는 거의 비어 있는 상태로 가동되고 있었다.

대다수 케이블카가 만성 적자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공공연하다.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된 자료를 살펴보면 유의미한 흑자를 기록한 경우는 여수해상케이블카와 통영케이블카뿐이다. 특히, 지난 2013년 개통한 영남알프스얼음골케이블카는 첫해 2억 원 흑자를 낸 뒤로 줄곧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18년 이후론 적자폭이 더욱 확대돼 매년 10억~15억 원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지역경제를 살릴 타개책인 줄 알았던 케이블카가 ‘예산 먹는 하마’로 전락한 셈이다. 그런데도 현재 전국에 30개가 넘는 케이블카가 운영 중이고, 20여 개 지자체가 신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케이블카로 인한 환경파괴는 돈으로도 되돌리기 어렵다. 지난 21일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지구의 케이블카 설치 예정지를 찾았다. 오전 6시 30분 한계령을 출발해 정상부로 향할수록 설악산 아고산대의 주요 침엽수종인 분비나무, 잣나무, 주목 등의 밀도가 높아졌다. 끝청 바로 아래 해발고도 1,430m 지점에서는 가슴 높이 직경이 60㎝에 이르는 잣나무도 흔했다. 고고도 환경에서 식물 성장이 극히 느려지는 특성을 고려하면 수령이 200년은 넘었을 것이라고 현장 관계자는 설명했다. 환경영향평가서에 따르면, 아고산성 특이식물을 포함해 1,721그루의 나무가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 및 지주 건설로 의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 현장을 동행한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지금 설악산은 기후 스트레스로 인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관광자원화가 아니라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영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생물다양성 보전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과 지주 설치 예정 부지를 따라 아래로 이동하는 동안에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산양의 서식흔이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국제 멸종위기종이기도 한 산양은 극도로 경계심이 많고 일생 동안 일정한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습성이 있다. 이미 내몰릴 대로 내몰린 현재의 서식지 한가운데로 쇠기둥을 박고 시간당 800명이 넘는 관광객을 그 위로 실어 나르는 일이 초래할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생태학자 김산하 박사는 “현재의 기후위기와 그에 따른 생물다양성 감소는 결국 우리 인간들이 일으킨 문제”라며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희귀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에 관광 시설을 지으면서 ‘산양보다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하는 건 대단히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강원도가 오색약수터-끝청 케이블카 노선 허가를 정부에 처음 요청한 것은 1982년이다. 유네스코(UNESCO)가 설악산 일대를 희귀한 자연자원의 분포 서식지로 보고 국내 최초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설정한 것도 1982년이다. ‘생물 다양성의 보고’로 지켜질 것인가? 아니면 지역경제 활성화의 '일회용 땔감’으로 쓰일 것인가? 40년이 지난 오늘 설악산이 기로에 서 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에서 “절차를 최대한 신속히 밟아 ‘원샷’으로 해결해서 연내 착공하겠다”고 자신했다. 설악산은 물론 지역 명산들의 유구한 역사에서 2023년은 어떤 시간으로 기억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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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정선·구미·대구·거제·통영·사천·하동·정읍= 하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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