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 독침에 '몸' 바친 과학자

입력
2023.04.03 04:30
24면
Justin Schmidt(1947.3.23~ 2023.2.18)

미국 농무부 부설 칼 헤이든(Carl Hayden) 꿀벌연구소 곤충학자 저스틴 슈미트는 ‘독침의 제왕(King of Sting)’이라 불렸다. 벌의 기능적-경제적 가치 즉 수분과 꿀 생산 효율성 제고와 농약 내성-천적 연구 등을 위해 설립된 국영 연구소에서, 그는 주로 벌과 개미 독성을 연구했다. 그나마도 벌독 성분의 약리 효과(apitherapy)가 아니라 독충이 유발하는 통증이 주된 연구 주제였다. 종마다 다양하고 판이한 통증 데이터는 직접 반복적으로 쏘여 보는 것 말고는 수집할 길이 없었다. 그는 그 연구를 시작한 1972년 이래 만 50년간 100여 종의 독충에게 1,000번 이상을, 드물게는 의도적으로 쏘였고, 83종의 통증 강도를 4등급으로 분류한 ‘슈미트 독침 통증지수(Schmidt Sting Pain Index)’를 완성했다. 그는 각 통증의 느낌도 예사롭지 않은 문체로 기술했다. 가령 가장 낮은 등급인 1등급 나나니벌(mud dauber) 독침 위력을 그는 “화끈한 매운 맛; 하바티(Havarti) 치즈의 달콤한 맛을 기대했다가 할라피뇨 치즈를 씹었을 때의 느낌”으로 묘사했다. 그는 ‘통증 감별사(Connoisseur of Pain)’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의 기이한 연구는 대중적 호기심을 자극해 그는 수많은 언론 인터뷰와 강연을 했고, 마블코믹스 슈퍼히어로 영화 ‘앤트맨’에도 등장할 만큼 유명해졌다. 과학자로선 드물게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영광(?)도 누렸고, 야심 있는 학자라면 떨떠름해 할 수도 있는 ‘이그 노벨상(Ig Nobel Award)’도 수상했다. 그는 꿀벌 무늬 의상에 꿀벌 탈까지 쓰고 시상식 단상에 섰다.
학계는 그를 그다지 진지하지 않은 ‘괴짜’쯤으로 치부했고, 특히 그를 고용한 연구소 측은 대놓고 못마땅해 했다. 일부 언론은 그에게 ‘통증에서 쾌감을 얻는 마조히스트거나 사내다움을 과시하려는 마초이스트 아니냐’는 농담 같은 질문도 했다.

하지만 그는 곤충 독이 일으키는 통증의 다양한 강도와 양상이 종별 진화와 진사회성(eusociality)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라 여겼던 화학생태학자였고, 군집-분업 시스템을 고도화한 종일수록 독침이 감각적 통증보다 실질적 파괴력을 지니도록 진화했으리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다시 말해 내외부의 압력과 눈치 속에서 독자적인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그는 ‘어떤 놈의 독침이 가장 아프더냐’는 등의 말초적 호기심까지 유쾌하게 충족시켜주며 대중적 관심과 인기를 연구의 방패처럼 활용했다. 그는 “나를 미친 놈이라 여기는 과학자들도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는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곤충학자 저스틴 슈미트(Justin Orvel Schmidt)가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별세했다. 향년 75세.

사실 슈미트는 희소한 과학자이면서 끈질긴 과학자였다. 개미나 벌에 대한 호기심을 짓궂은 장난으로 충족시키곤 하는 대개의 (남자)아이들처럼, 그도 만 7세 때 꿀벌로 선생님을 골려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생애 최초의 그 실험에서 그는 자신의 가설 즉 벌이 선생님을 쏘리라는 가설을 성공적으로, 비극적으로 입증했다. 그는 벌을 받았겠지만, 호기심을 포기하진 않았다.

그는 펜실베이니아대 임학과 교수 아버지와 중등학교 가사 교사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북동부애팔래치아산맥 기슭의 식물과 곤충에 익숙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훗날 회고록에 그는 또래 아이들과 돌팔매질로 말벌집을 공격했다가 “달군 인두로 목과 등을 지지는 듯한” 통증을 경험하기도 했고, 노란 줄무늬 말벌인 ‘옐로 재킷’을 일삼아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고 말했다. 2018년 가디언에 기고한 에세이에 그는 “유년 시절 이미 애팔래치아에 서식하는 거의 모든 꿀벌과 말벌 종에게 쏘여봤다”고 썼다. 다행히 그에겐 치명적인 벌독 알레르기(아나필락시스)가 없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대 화학과(69년)와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대 석사과정(72년)을 마친 뒤 조지아대 생물학과(곤충학)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연구실에 갇혀 지내는 때가 많은 화학보다 “살아 움직이는 자연”에 더 끌렸기 때문이다. 50년대 말 그 존재가 알려진 페로몬(Pheromone) 즉 곤충의 화학적 의사소통 물질의 첫 실체가 규명된 직후였고, 조지아대는 농학과 곤충학 분야에서 가장 앞선 대학 중 한 곳이었다. 학부-대학원에서 생물학은 달랑 두 과목만 이수한 그에게 새 전공은 용어부터 낯설었다. 그는 학부생들과 함께 주요 곤충의 학명을 외우고 현미경 사용법부터 익혀야 했다.

그렇게 학부-대학원 만 7년을 쏟아 부은 화학에서 점점 멀어져가던 어느 날, 그는 현장 곤충 채집 도중 ‘수확개미(harvester ant)’에게 물렸다. 벌 독침에 이골이 난 그에게도 수확개미의 위력은 눈이 번쩍 뜨일 만큼 강렬하고 생경했다. “오! 여기 화학이 있네.” 그는 당시 가장 전도유망한 분야로 꼽히던 ‘(성적) 페로몬’과는 거의 상반된 성분인 독(침)이라는 호전적 화학물질에 끌리기 시작했다. 훗날 그는 수확개미 독을 통증지수 ‘3등급’으로 분류하고, 그 통증을 “대담하고 무자비한 통증; 약 8시간 동안 내향성 발톱 속에 전동 드릴을 박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 묘사했다.

‘통증 감별사’라는 별명처럼, 그는 유혹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적 비유로 통증별 양상과 느낌을 자신의 통증지수에 소개했다.
1등급 무당벌과(Sapygidae) 말벌 ‘클럽 뿔 말벌(Club-horned wasp)’의 독침을 그는 “실망스러움; 맨발에 종이 클립이 떨어진 듯한 느낌”이라 묘사했고, 역시 1등급인 ‘앤토포리드 벌(Antohphorid Bee)’은 “연인이 귓불을 애무하다 약간 힘주어 깨문 듯한, 달콤함에 가까운 통증”이라 기록했다. 2018년 한국에도 유입돼 언론에 의해 ‘살인 개미’라는 누명을 썼던 남미 원산 ‘붉은불개미(학명 Solenopss invicta)’도 1등급이었다. “날카롭고 갑작스럽고 약간 놀라운 통증; 푹신한 카펫 위를 걷다가 (접지 불량) 조명 스위치에 닿은 느낌.” 반면 그가 ‘독충의 성배(holy grail of stinging insects)’라 명명한 4등급 ‘총알개미(bullet ant)’의 통증은 “순수하고 강렬한, 눈부신 통증; 발꿈치에 3인치쯤 되는 못이 박힌 채 벌겋게 단 석탄더미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라 썼다. 그는 브라질 현지 조사 도중 무심결에 총알개미 군집에 손을 갖다 댔다가 생애 처음 “마치 달리는 화물열차에 부딪친 듯, 강렬하고도 압도적인 통증”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가 “죽어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독침”으로 꼽은 건 역시 4등급인 ‘타란툴라사냥벌(tarantula hawk)’이었다. “눈앞이 하얘질 만큼 강렬한, 전기충격 같은 통증; 거품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작동 중인 헤어 드라이어를 빠뜨렸을 때의 느낌”이었다.

통증의 지속시간은 강도와는 또 다른 문제였다. 타란튤라사냥벌의 통증은 약 2분, 전사말벌은 약 한 시간만 버티면 사라지지만, 총알개미의 통증은 12~36시간 지속된다고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한 곤충도, 자신에게 독의 매력(?)을 깨닫게 해준 총알개미였다.

저 ‘데이터’를 수집하고 비교 분석하는 과정은 무척 고독한 고행이었다. 남미 코스타리카 밀림에서 양봉 그물을 뒤집어 쓴 채 한 말벌종(paper-nesting wasp)의 벌집을 채취하다 나무에 매달린 상태로 성난 벌떼 그물 눈 사이로 물총처럼 쏘아대는 독액 세례를 받은 적도 있었고, 손이 하키 장갑처럼 퉁퉁 부은 적도 있었다. 벌침이 혀에 꽂힌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마조히스트라는 일부의 ‘의심’과 달리, 그는 “나는 사실 겁쟁이다. 의도적으로 쏘이려고 노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고, NPR 인터뷰에서는 “원한다(want)는 단어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나는 데이터는 늘 원하지만, 독침을 원한 적은 없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독충들은 “내 도움 없이도 기꺼이 독침을 내어주곤 했다”고도 말했다. 그는 가디언 에세이를 이런 문장으로 끝맺었다. “어떤 경우든 일단 쏘이면 내 첫 반응은 다른 이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우선 스스로 부끄러워질 만큼 욕을 퍼붓는다. 그런 뒤 노트북과 스톱워치를 꺼내 앉아 (느낌과 변화의 양상을) 기록한다.”

그는 독침을 곤충들의 (화학무기인 동시에) 심리전 무기(psychological warfare)라고 주장했다. 독침을 활용하는 일부 사냥 곤충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방어용이고, 독침이 일으키는 통증과 세포 공격력도 포식자 등 적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한 메시지라는 것. 그리고 “잃을 게 많은 종일수록 더 지독한 독침을 지니도록 진화했다”는 가설을 세웠다.

‘진사회성(eusociality, 또는 유사회성)’이라 불리는 고도의 분업 체계를 구축한 사회성 곤충일수록 그들의 독침은 통증보다는 실질적 상해, 즉 세포막을 파괴하거나 신경을 마비시키는 성능을 강하게 진화시켰다는 게 그의 이론의 요지였다. 단독생활 종인 타란툴라사냥벌 독침은 극강의 통증을 유발하지만 지속적인 세포 손상 능력은 거의 없다. 하지만 대표적인 군집종인 꿀벌 독의 주성분인 멜리틴(melittin)은 상대적으로 통증은 덜해도 심장 독성이 강해, 반복적으로 쏘일 경우 심장을 멎게 할 수도 있다. 달랑 몸뚱이 하나가 전재산인 타란툴라사냥벌과 달리, 꿀벌에게는 지켜야 할 집이 있고, 세대를 이을 알들이 있고, 크고 작은 포유동물들까지 탐내는 꿀이 있다. 더 맹렬한 동기로 덤벼드는 포식자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공포탄 같은 통증보다 실질적이고 치명적인 독침이 필요했다는 거다. 그의 통증지수는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데이터 분석의 결과였다.

물론 그의 데이터는, 일부 지인-동료들의 체험담도 참조하긴 했다지만, 대부분 스스로 경험한 바를 정리한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자료였다. 그나마도 쏘일 당시 상황과 쏘인 부위 등 변수가 통제되지 않은 거였고, 1,000여 회의 데이터도 개인으로서야 기네스급이어도 과학적 데이터로는 충분치 않았다. 저 과학적 한계는 모두 예견된 거였고, 경제적 가치도 당연히 변변찮았다.
사람들은 그에게 늘 “왜? 하필?” 등의 질문을 맨 먼저 던졌다. 시간과 열정을 낭비한다는 비판도, 그만두라는 압박도 적지 않았다. 괴짜라는 지적은 사실 온건한, 애정 어린 질책이었다.

그는 방송 토크쇼 등 부르는 데는 마다 않고 출연했고, ‘TED’ 교육용 애니메이션 ‘It Hurts(2021)’ 제작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자신의 연구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아니라 호기심-흥미를 자극하기 위한 인터뷰에도 흔쾌히 응했다. 그렇게라도 알려지면 직장에서 간섭을 덜 받으리라는 게 그의 기대였다. 그가 유발한 호기심과 웃음도, 벌침처럼, 일종의 심리전 무기였다.

그는 알려진 바 단 한번도 외부의 연구비 지원을 받은 적이 없었다. 2010년 이사해 만년을 보낸 애리조나 투손 외곽의 집도 돈을 아끼려고 직접 지었고, 자동차가 고장나도 웬만한 건 혼자 고쳤다. 그에겐 사별-이혼한 두 전처와 낳은 2남 2녀가 있었고, 개원의(가정의학)인 아내 리 슈미트(Li Schmidt)가 있었다.

그는 농무부 연구소와 애리조나대 농생명과학부 겸임과학자로 재직하며 100여 편의 피어리뷰 논문과 다수의 공동 저서, 회고록 ‘야생의 독침(The Sting of the Wild, 2016)’을 썼다. 책에는 83년 처음 만들어 평생 보완한 ‘슈미트 통증지수’를 부록으로 수록했다. 2005년 은퇴한 뒤로 그는 개인 연구실로 개조한 옛집에서 ‘빨간벨벳진드기’라는 거미류의 짝짓기 등을 연구했다.

그는 기회가 날 때마다 인류의 곤충 혐오-공포증을 중화하기 위해 애썼다. 공포증의 주요인인 독(침)의 메시지를 통역해 오해와 진실을 해명하고자 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곤충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일반적으로 곤충은 우리를 원치 않지만, 우리에게 곤충은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곤충이 사라지면 모든 생명체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 미래가 조만간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