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수백 배 '금덩어리' 찾아낸 중력파 관측

입력
2023.03.30 19:00
25면

편집자주

퀘이사와 블랙홀 등 온갖 천체를 품은 '우주'는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대상이다.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인 우주에 대한 탐구 작업과 그것이 밝혀낸 우주의 모습을 알기 쉽게 소개한다.


아인슈타인 예측 100년 후 실증된 중력파
중력파가 찾아낸 중성자별은 우주 '금 공장'
중력파 시즌4, 더 많은 우주 비밀 확인 기대

몇년 전 금괴가 가득 담긴 주인 없는 가방이 거리에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그 금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궁금해했던 기억이 있다. 천문학에서는 그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중력파이다. 많은 사람에게 매우 생소한 개념일 텐데, 그도 그럴 것이 중력파로 우주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 8년 전에 불과하다. 예로부터 인류는 별에서 오는 '빛'으로 우주를 관측해 왔는데 2015년부터는 빛이 아닌 중력파라는 새로운 신호를 통해서도 우주를 볼 수 있게 됐다. 사람으로 따지면 오감에 더하여 새로운 감각인 육감이 생긴 것인데, 육감으로 살펴보는 새로운 우주와 세계는 얼마나 신기하겠는가.

중력파란 질량이 있는 물체가 급격하게 운동할 때 생긴 시공간의 요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연못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듯 우주에서 일어난 중력의 급격한 변화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으로 상상하면 되겠다. 어려운 개념이라고 너무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 1916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통해 예측된 중력파는 정작 아인슈타인 본인도 죽을 때까지 그 존재를 의심했을 정도니까. 1916년으로부터 거의 100년 세월이 흐른 2015년 9월에야 미국 주도로 건설된 라이고 중력파 천문대가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중력파 신호를 검출하면서 중력파는 인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빛으로는 볼 수 없던, 블랙홀 2개가 병합하는 과정을 처음으로 생생하게 포착한 것이다.

이제 중력파 관측은 점점 일상화되어 가고 있는데 그중 많은 주목을 받는 중력파 발생 사건이 중성자별의 합병이다. 중성자별이란 찻숟가락 하나 정도 부피가 전 세계 인구의 총질량만큼 무거울 정도로 물질이 매우 압축되어 있는 특이한 별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중력파 사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블랙홀 합병과 달리 2개의 중성자별이 충돌해 합병하면 중력파뿐만 아니라 빛 신호도 유발하여 우주에 관한 심층적 연구를 가능케 한다. 중성자별 합병에서 생긴 중력파는 2017년 8월 17일 최초로 검출되었다. 필자도 이 사건을 운 좋게 연구하였고, 다수 언론매체에 연구의 의의를 설명할 기회가 있었다. 우주를 연구하는 새로운 창이 생겼느니, 우주 팽창률을 새롭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느니, 열심히 설명하였으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다만 일반 시민들은 다른 설명에 열광했다. 이 중성자 합병 사건으로 지구 질량의 수백 배나 되는 많은 양의 금이 만들어졌다는 설명이었다. 중성자별 합병은 중성자 포획이라는 과정을 유발하여 다량의 금을 만들어 내니 우주의 금 공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거리에서 발견되었던 금 역시 중성자별의 합병으로 생겨난 것이라 추정된다. 중력파 관측을 통해 우주의 금 공장, 즉 중성자별 합병이 어디에서 발생하였는지 알 수 있다. 경제적 효과를 묻는 사람에게 할 수 있던 대답은 빛의 속도로 1억2,000만 년을 가야 도달할 수 있는 곳에 금 공장이 생겼다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중력파 관측은 넷플릭스 드라마처럼 시즌제로 진행된다. 한 시즌이 끝날 때마다 중력파 검출기 업그레이드를 1년쯤 진행하고, 다시 1년의 새 관측 시즌을 맞이하는 식이다. 올해 5월 24일에는 중력파 관측 시즌4가 시작한다. 관측 시즌4 동안 10개 내외의 금 공장 포함 수백 개의 중력파 사건의 발견이 예상된다. 그뿐만 아니라 우주의 여러 수수께끼를 풀 단서도 관측 시즌4 때 얻어질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이 가능하리라 상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텐데 인류의 기술 발전은 매우 놀랍고 우주에는 아직도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새 드라마 시리즈 방영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큰 설렘으로 중력파 관측 시즌4가 기다려진다.



임명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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