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한번 보실래요?”
가방에서 태블릿PC를 꺼내더니 동영상을 켰다. 영상 속에선 로봇 하나가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옆으로 미끄러지기도 하고, 다리가 꼬이기도 했으며, 아예 뒤로 자빠져버리기도 했다. 그러더니 막판엔 아예 ‘팡’ 터져버렸다. 영상 제목은 ‘Bloopers’, 그러니까 일종의 NG모음이다.
“이것도 보세요.”
그는 또 다른 영상을 켰다. 아까 그 로봇이다. 그런데 이번엔 넘어지지 않는다. 공을 던져도, 발로 차도 거뜬하다. 게다가 상자를 나르고 잔디밭을 걷기도 한다. 속도는 느리게 걷는 사람과 비슷하다. “이게 바로 우리가 만든 로봇의 ‘끝판왕’이에요.”
이 로봇은 아르테미스. 그는 아르테미스의 아버지 데니스 홍(52ㆍ홍원서) 미국 UCLA 교수다. 로봇을 만드는 로멜라연구소(RoMeLa) 소장이다. 아르테미스는 ‘Advanced Robotic Technology for Enhanced Mobility and Improved Stability’의 약자. ‘끝판왕’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이전에 만들었던 로봇들보다 향상된 이동성과 안정성을 갖춘, 가장 진보된 로봇이다. 2018년 아르테미스를 연구하기 시작했으니, 6년 만에 맺은 열매다. 아르테미스처럼 뛰는 로봇은 학계 최초의 성과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같은 산업체가 만든 로봇까지 쳐도 세계 세 번째다. 사람의 관절과 근육 같은 탄성과 힘 조절 능력을 갖춘 로봇은 로봇 공학자들의 이상향이다.
여기서 의문. 홍 교수는 아르테미스가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영상을 도대체 왜 모아놨을까. 아르테미스의 흠결 없는 모습만 담았어도 될 텐데. “넘어졌기 때문에 안 넘어질 수 있게 된 거거든요. 아르테미스는 아마 만 번도 넘게 넘어졌을 거예요. 실험을 하면서 찍은 동영상만 1TB(테라바이트) 정도죠. 일부러 막 넘어뜨리기도 하죠. 넘어지는 원인을 찾으려고.”
처음엔 그저 재미있어서 만든 NG영상이었다. “그런데 다시 보이더라고요. 로봇은 넘어질 때마다 업그레이드되거든요. 경험이 많아야 똑똑해지는 거죠. 사람도 그렇잖아요? 로봇을 만들면서 인간에 대해 새삼 다시 배우죠.”
그도 그랬다. 승승장구, 탄탄대로였다. 2014년 이전까지는. 그해 학교를 버지니아 공과대(버지니아텍)에서 UCLA로 옮기면서 그는 자신의 로봇들을 모두 빼앗겼다. 로봇은 그의 분신이자 정체성이다. 믿고 따랐던 멘토 교수에게도 배신당했다. 대학 측은 동료이자 가족 같던 제자들과도 갈라놓았다.
“그때 난 모든 걸 잃었죠. 아르테미스를 만들고 나서야 그 사건으로 겪은 트라우마나 고통, 시련의 시간이 극복된 느낌이에요.”
회복 탄력성은 아르테미스에게만 생긴 게 아니었다. 크게 넘어진 이후 홍 교수도 달라졌다. “그래서 실패를 뭐라고 생각하냐고요?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 그런 거? 오, 노(Oh, No)!”
그는 ‘스타 교수’다. 소속사(인플루엔셜)가 있고, 매니저도 있다. 강연, 북토크, 방송 출연, 인터뷰 같은 한국 일정이 많아지면서 전담 관리하는 회사가 생겼다. 대학 때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까지 살고 있지만, 한국에서도 유명하기 때문이다. 식당이나 거리에서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인과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건 이제 예삿일이다.
그는 ‘천재 로봇 공학자’다. 지금까지 만든 로봇이 40~50개 정도다. 세계 최초로 시각장애인용 자동차를 만들었다(2011년). 워싱턴포스트는 “달 착륙에 버금가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성인 크기의 휴머노이드 로봇인 찰리를 미국에서 처음으로 만든 것도 그다. 찰리는 2011년 로보컵(RoboCup) 챔피언이 됐다. 로보컵은 로봇들이 출전하는 월드컵이다. 글로벌 과학전문지 ‘파퓰러 사이언스(Popular Science)’가 이미 2009년 ‘과학을 뒤흔드는 젊은 천재 10인’ 중 한 명으로 꼽았다.
그런 그에게 ‘실패’를 주제로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더니, 이런 반응이 왔다. “실패 스토리만 가지고 30분 이상 할 얘기가 있을까요.” 마주 앉은 뒤엔 “무엇을 실패로 볼 것인지 정해야 할 것 같다”며 실패의 정의부터 내렸다. ‘뼛속까지 이과생’이란 말은 이런 때 쓰는 걸까. 둘 다 웃음을 터뜨리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터뷰는 30분이 아니라 3시간 동안 이어졌고, 그는 “이런 얘기까지 하게 될 줄 몰랐다”며 눈물을 훔쳤다. 평소 미디어에서 보이는 밝고 유쾌한 에너지가 흘러 넘치는 모습과는 다른, 그의 이면이었다.
아, 그가 인터뷰 초반 전제한 ‘실패의 정의’는 “목표를 이루려 노력했으나 이루지 못한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됐지만.
-2018년 낸 에세이집 ‘데니스 홍,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법’에서 “로멜라는 실패도 교육과정으로 삼는다”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로멜라의 가장 중요한 철학은 ‘실패해도 오케이(괜찮아)’라는 거예요. 그래야 도전이 두렵지 않게 되거든요. 혁신이란 건 마치 낭떠러지의 경계선을 걷는 일이나 마찬가지거든요. 떨어질 게 무서워서 안전한 데로만 가면 혁신이 나올 수가 없죠.”
-학생들에게 어떻게 ‘실패해도 괜찮다’는 걸 심어주나요.
“무조건 도전하고 막 실패하라는 건 아니에요. 설명하자면 ‘현명한 실패’죠. 도전할 가치가 있는지 일단 판단해보는 게 중요해요. 성공 가능성은 적고 실패 가능성이 많지만, 성공할 경우 파장이 큰 일이라면 도전해야 하죠. 도전하되, 안전 장치를 준비하는 거예요. 아르테미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넘어뜨리는 테스트를 할 때 넘어지더라도 부서지지 않도록 패딩을 붙이든지, 바닥에 안전판을 두든지 하는 것처럼요. 혁신을 만들려면 도전을 해야 하고, 도전하면 실패도 많이 하게 돼 있어요.”
-실패는 혁신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거군요.
“맞아요. 실패는 긴 과정의 하나일 뿐이에요. 실패를 하고 나서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도 중요해요. ‘포기하고 좌절하고 이건 끝이야’ 하면 진짜 끝이지만, 거기서 배운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 실패는 좋은 거예요.”
-그렇게 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이면 실패를 좀 덤덤히 받아들이게 되나요.
“그냥 실패만 본다면, 나쁜 거죠. 실패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하지만 누구나 실패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한 거고, 그에 따라서 좋은 게 될 수 있는 거죠. 제가 연구소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점이죠. 저 역시 실천하고 있고요.”
-여섯 살 때 영화 ‘스타워즈’를 보고 로봇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알고 있어요. 그 이후 평생 이 일을 해야겠다고 진지하게 확신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어요. 세상에 없던 로봇을 만들고 싶었죠. 그러려면 연구소가 필요했어요. 물론 기업을 만들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학교에 있고 싶었죠. 부모님 모두 교수였기 때문에 익숙하기도 했고요. 대학 교수는 연구비를 끌어오는 능력만 있다면 로봇을 연구하기에 아주 좋은 직업이죠.”
-그런데 초반에 연구비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지요.
“처음 2년은 완전히 ‘루저’였죠. 진짜 눈앞이 깜깜했어요. 여기저기 연구 제안서를 냈지만, 줄줄이 떨어지는 거예요. 혼자 연구실에서 울기도 했죠.”
-교수한테 연구비가 얼마나 중요하기에 그랬나요.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연구비가 있어야 실행할 수 있거든요. 연구 주제가 있으면 여러 기관들에 제안서를 써서 보내요. 심사에 통과하면 그 기관에서 펀딩을 하는 거죠. 그러면 그 돈을 대학과 연구소가 나눠 갖게 되고, 연구소에선 그 돈으로 연구를 하는 거예요. 제안서를 쓰는 데도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죠. 주제에 따라서는 사전 연구만 1년 정도 하기도 해요. 그런데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고, 공을 들여 제안서를 만들어도 채택되지 않으면 연구비가 안 나오니 연구를 할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래도 돌파구가 생겼지요.
“맞아요. 현재 한국로봇융합연구원 원장인 여준구 교수의 제안으로 미국국립과학재단 연구제안서 검토위원단 평가위원을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깨달았죠. 연구제안서는 설득력이 핵심이란 걸요. 그런데 난 그간 내 아이디어가 얼마나 기가 막히게 좋은지 그것만 제안서에 썼던 거예요. 이 연구를 지원해야 하는 이유, 그러니까 사회적 파급력이나 의미를 설명하는 게 중요한데 그건 빠뜨리고요. 제안자에서 검토자로 처지가 바뀌어보니 알겠더군요. 그 뒤로는 제안서를 내서 탈락해본 적이 없죠.”
그는 로봇을 만드는 이유를 “인간이 행복해지는 데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걸 가장 직관적으로 느낀 경험이 시각장애인용 자동차 브라이언을 개발했을 때다. 3년 연구 끝에 2011년 1월 29일 미국 플로리다 데이토나 국제 자동차 경기장에서 브라이언을 처음 선보였다. 롤렉스24 자동차경주대회 예선전에서 브라이언은 시속 45㎞로 가장 느렸지만,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 운전자는 마크 리코보노, 시각장애인이었다. 성공적으로 운전을 마치고 차에서 내린 마크의 눈빛, 역시 시각장애인인 아내와 뜨겁게 포옹하는 장면, 뒤이어 마크가 그를 안았을 때 느낌이 그에게 각인돼 있다.
-그때 기분이 기억나나요.
“우리가 하는 일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강렬하게 느꼈죠.”
-워싱턴포스트도 “달 착륙에 버금가는 일”이라고 평가할 만큼 대단한 성과였죠.
“그런데, 그날 저는 기자회견도 가지 않고 혼자 호텔방에서 울었어요. 전화기가 막 울려대고, 다들 나를 찾았지만. 왜 그랬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혼자 있고 싶었어요. 부정적인 감정은 아니었는데,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 전까지 논문도 여러 건 썼고, 새로운 발명도 많이 했지만, 논문이 실제 제품이 돼서 사회를 바꾼 케이스는 많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약간 회의감이 들기도 했는데, 그때 내가 하는 일이 진짜 사회를,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걸 실질적으로 알게 됐어요.”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시각장애인용 자동차 개발을 시도한 게 그의 팀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시작은 미국시각장애인협회(The National Federation of the BlindㆍNFB)가 연 시각장애인용 자동차 개발 도전대회(Blind Driver Challenge)였다. 지원자가 12명의 학부생과 함께 꾸린 그의 팀이 유일하자 프로젝트의 성격으로 바뀌었다.
-왜 지원자들이 없었을까요.
“앞서 치러진 무인 자동차 경주대회 참여자들에게 제가 묻기도 했어요. ‘불가능한 과제다‘ ‘돈도 안 되는 일인데 왜 도전하겠나‘ 같은 답이 돌아오더라고요.”
-결국 실패할 일인데 왜 도전하냐는 거네요.
“그렇게 볼 수도 있죠. 성공하기 어려운 일에 시간과 노력을 소비하기보다 다른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게 낫다는 의미였어요.”
-그런 얘기를 듣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았네요.
“처음엔 오기가 들었죠. ‘안 된다는 거지? 그런데 내가 성공하면 어쩔 건데?’ 같은. 크게 고민하지도 않았어요. 무인 자동차와 시각장애인용 자동차는 전혀 다른 성격이라는 걸 개발하면서 깨달았지만.”
-그런데 막상 그 자동차를 시각장애인이 진짜 운전하는 걸 보니 어땠나요.
“도전하면서 가진 생각이나 감정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냥 제로의 상태였다고나 할까요. 마냥 뿌듯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니면서, 아리기도 한, 정말 설명 못할 감정이었어요. 겸손해지기도 했고요. 그때 호텔방에서 많이 울었거든요. 그러다가 ‘내가 왜 울고 있지’ 하면서 웃었다가 또 눈물을 쏟았다가 그랬죠.”
그 기억과 함께 그의 눈시울이 이내 붉어졌다. “벌써 12년 전 일인데도 마음이 그때로 돌아가네요.”
그런데 다시 없을 감정을 안겨준 자동차 브라이언은 지금 그의 곁에 없다. 볼 수도 없다. 2014년, 살면서 그가 가장 크게 넘어진 사건 때문이다.
그는 2014년 대학을 버지니아 공대에서 UCLA로 옮겼다. 스카우트 제안을 받은 것이다. 문제는 로멜라에서 그가 개발한 로봇들, 그리고 로멜라 소속 그의 제자들이었다.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그를 붙잡았는데도, 그가 결정을 번복하지 않자 버지니아 공대 측은 로멜라 문을 걸어 잠그는 것으로 응수했다. 비밀번호를 바꿔버린 것이다. 그간 개발한 로봇들도, 그의 연구자료도 모두 로멜라 안에 있었다. 결국 그는 몸만 UCLA로 옮기게 됐다.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멘토처럼 믿고 따랐던 동료 교수에게 배신도 당했다.
-충격이 컸지요.
“학교가 낸 특허를 제외하고, 교수의 연구물은 대학의 것이 아니에요. 학교 자산으로 분류된 것을 빼면, 로봇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2003년부터 제가 만든 모든 로봇을 뺏겼어요. 로보컵 2연패를 한 찰리도, 시각장애인용 자동차 브라이언도요. 그런데 어떤 일이 있었는 줄 아세요? UCLA로 옮긴 뒤 열린 로보컵에 내가 만든 로봇인 토르가 상대 선수로 나온 거예요.”
-그건 어떤 기분인가요.
“마치 납치당한 아들을 다시 만나 반가운데, 그 아들이 나쁜 놈들에게 세뇌를 당해서 나를 공격하는 듯한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그 와중에 나는 너무 반가워서 달려가 안아주고 싶고요. 그러니까 정말 ‘멘붕’이었죠. 자칫하다간 정신이 어떻게 될 수도 있겠더라고요.”
-토르는 어떤 로봇인가요.
“그때까지 제가 만든 가장 걸작이었죠. 한국에도 토르 팬이 많은데, 제가 오리지널 토르 얘기는 잘 하지 않아요. 마음이 아파서. 그런데 이번에 토르를 훨씬 뛰어넘는 아르테미스를 만들면서 비로소 그 트라우마가 싹 사라졌어요.”
-오랫동안 힘들었군요.
“그렇죠.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였어요. 이제는 괜찮아졌지만. 하하.”
-9년 만에 극복이 된 건가요.
“맞아요. 그간 인터넷이나 페이스북에서 내가 만든 로봇들이 로멜라가 아니라 다른 소속의 스티커를 붙인 채로 뜨면 진짜 혈압이 확 솟는 기분이었거든요. 보지를 못했어요.”
-로봇이 어떤 의미이기에 그런가요.
“아들이라고 표현하면 좀 과장이겠지만, 그 비슷한 감정이에요. 나의 아이덴티티(정체성), 내가 이룬 또 다른 나 같은 존재죠. 그러니까 나를 빼앗긴 듯한 느낌이었어요.”
-지금까지 만든 로봇들은 모두 데니스 홍의 또 다른 조각들이군요.
“맞아요. 그 이후 황무지에서 시작해 9년 만에 그 모든 조각을 다 합친 것보다 훌륭한 새로운 나(아르테미스)를 만든 거죠! 아르테미스는 극복의 결과물이에요. 로봇의 끝판왕! 물론 우리 연구소 학생들과 함께 해서 이룰 수 있었죠.”
-아르테미스도 로보컵에 출전하는 거죠.
“올해는 7월 프랑스 보르도에서 열려요. 아르테미스도 출전할 거고요. 아르테미스의 또 다른 의미가 뭔지 아세요? ‘A Robot That Exceed Messi In Soccer’의 약자, 메시를 능가하는 로봇이라는 뜻이에요! 하하.”
-로봇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일부러 수없이 넘어뜨린다고 했잖아요. 그때마다 업그레이드되는 거죠.
“맞아요. 경험이 많아야 똑똑해져요.”
-2014년의 사건도 크게 넘어진 경험인데 어땠나요.
“결과적으로 저는 제가 자랑스러워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당시 저한테 불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윤리적이지도 않은 대처법을 조언한 분들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따르지 않았어요.”
-옳다고 생각한 길을 따랐군요.
“어릴 때부터 아버지(한국 최초 탄도 미사일 ‘백곰’을 개발한 고 홍용식 교수)가 강조하신 말씀이 있어요.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옳은 길을 선택해라. 당장은 망하는 것 같더라도 길게 보면 그게 바른 결정이다’라고. 그 일을 겪은 뒤에 부모님과 식사할 일이 있었어요. 아버지가 먼저 그 사건 얘기를 꺼내셨죠. 그때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제가 이렇게 얘기했어요.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랐지만 그래서 모든 걸 잃었다’고.”
-부친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저를 안아주시면서 ‘네가 눈을 감을 때 이때를 돌아보면 분명히 네 자신이 자랑스러울 거다’라고 해주셨죠.”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결정이었어요. 오랫동안 힘들었지만요.”
-그 힘든 9년의 시간을 극복한 상징인 아르테미스를 부친께서 보신다면 좋아하실 텐데.
“지금 하늘에서 보고 계시겠죠. 자랑스러워하실 거예요.”
-아르테미스도 만 번이 넘게 넘어진 결과로 탄생했잖아요. 2014년 크게 넘어진 후 무엇을 느꼈나요.
“앞으로 인생에서 이런 시련이 또 닥칠 거예요. 그렇다고 해도 두렵지가 않아요. 고통스러워도 옳은 결정을 하고 결국 이겨낸 내가 자랑스러워요. 더 현명해진 거죠. 또 그런 위기가 닥친다고 해도 이젠 준비가 돼 있어요. 헷갈리지 않고 길을 잘 선택하리란 믿음이 있어요. 로봇도 넘어질 때마다 (단점을 보완하게 되니까) 똑똑해지거든요. 사람도 그런 거죠.”
-그 이전의 데니스 홍과, 이후의 데니스 홍은 무엇이 달라졌나요.
“시련을 원하는 사람은 없겠죠. 그런데 어떤 땐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2014년이 제가 한창 잘나갔을 때였거든요. 유명 잡지들 표지에 실리고, 한국에 오면 팬들이 환호하고, 상도 받고요. 목에 힘이 딱 들어갔을 때 뒤통수를 턱 맞은 거죠.”
-그 사건이 태도를 변하게 한 거군요.
“맞아요. 그즈음 한국에 오면 친구들, 심지어 제 누나도 ‘너 많이 바뀌었다’고 (농반진반으로) 그랬거든요. 겉으로는 ‘아이고, 무슨’ 이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씩 웃으면서 ‘내가 부러워서 그런 거지’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어요. 제가 그렇게 변한 걸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알게 된 계기가 있어요.”
-언제인가요.
“2013년 한국 코엑스에서 강연을 하고 강연장을 나서는데 청중이 저를 둘러싸고 환호해서 난리가 난 거예요. 그때 저한테 경호원도 붙었다니까요. 경호원들 안내로 호텔방에 들어왔는데 아드레날린이 뿜뿜하면서 저도 모르게 으쓱한 거예요. 그때 세수를 하고 고개를 들어서 거울 속 내 얼굴을 딱 마주했는데 소름이 쫙 끼쳤어요.”
-왜요.
“거울에 내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아닌 거예요. 아주 거만한 얼굴이 있었죠. 마치 귀신을 본 듯했어요. 소름이 끼쳐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서 멍하니 있었어요. 나 자신을 잃으면 안 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이후에 대학을 옮기면서 그 사건도 겪은 거군요.
“맞아요. 거울 속 낯선 나를 본 경험으로 정신을 좀 차렸고, 결정적으로 그 사건을 겪으면서 확실히 변화했어요. 책 ‘오늘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은 오늘 하지 않습니다’는 제가 페이스북에 올린 생각의 단상을 모은 거거든요. 편집자가 충분히 책으로 엮을 만한 내용이라고 해서요. 그 전까지는 그렇게 깊은 얘기들이 제 안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실패한 학생들에게 해주는 말이 있나요.
“우리 연구소에선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아요. 그런 분위기를 만들지 않죠. ‘안 됐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로 넘어가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패했다고 슬퍼하거나 기분 나빠할 겨를이 없어요. 오히려 실패하지 않는 걸 좋게 보지 않죠. 그만큼 도전해보지 않았다는 거니까. 인생도 같은 맥락일 수 있겠죠. 저는 뭐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거, 없어요.”
-실패를 거창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거군요.
“Exactly(정확해요)!”
-실패의 정의를 데니스 홍의 인생사전에서 다시 써본다면 뭘까요.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디딤돌이다. 그건 진짜로, 연구에서도, 내 삶에서도 기본이 되는 생각이에요. 말하자면, 실패는 Blessing in disguise(가장된 축복)죠. 지나고 보니 축복이란 거예요. 제 아들 이든한테도 자주 해주는 얘기죠.”
-지금까지 해온 실패의 경험들로 얻은 삶의 도는 무엇인가요.
“긍정은 언제나 길을 찾는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이겨낸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뒤집어 헤쳐 찾아보면 어딘가에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거예요. 그걸 찾아서 키우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요. 공교롭게도 UCLA의 모토이기도 해요. 그래서 제가 학교 광고에도 등장한다니까요. 하하.”
그에게 자주 붙는 수식어는 ‘천재 로봇 공학자’다. 그 대신 다른 말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실패’라는 단어를 활용해서.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데니스 홍, 실패를 이용할 줄 아는 데니스 홍!”이라고 답했다.
“좋든 나쁘든 과거의 그 일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내가 있는 거죠. 그래서 오늘의 내가 참 좋아요. 그리고 오늘의 나한테 100% 만족해요! 하하하.”
그가 ‘로봇의 끝판왕’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한 아르테미스가 넘어지지 않는 비결은 조인트 구동장치에 있다. 인간의 근육처럼 힘 조절이 가능하고 유연해 쉽게 넘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 대목을 설명하다가 그는 눈을 반짝이며 또 말했다. “유연한 사람들은 살면서 넘어져도 부러지지 않잖아요. 뻣뻣한 사람들이 버티다가 결국 부러지죠.”
넘어졌기에 몇 십 배 강력해진 데니스 홍, 실패로 업그레이드된 데니스 홍이 알려주는 ‘현명한 실패’를 하는 비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