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또 한 번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의 국제 대회 참가를 옹호하고 나섰다. 반면 양국 선수에 대한 세부적인 출전 제재는 강화해 사실상 기존 ‘출전 금지 권고’ 상태로 회귀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바흐 위원장은 29일(이하 한국시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IOC 집행이사회 회의 모두발언에서 “러시아와 벨라루스 여권을 가진 선수들이 국제 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효과가 있다(Participation works)”고 말했다. 근거는 현재 테니스를 비롯해 탁구, 사이클, 아이스하키, 핸드볼 등 많은 국제 대회 종목에 러시아∙벨라루스 선수들이 참가하고 있지만 보안 관련 사고가 발생한 적은 없다는 것. 두 나라 선수의 출전이 대회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IOC의 이번 발언은 1년 전 내렸던 출전 금지 권고 ‘뒤집기’의 일환이다. IOC는 우크라이나 침공 발발 나흘 만인 지난해 2월 28일 산하 종목 연맹에 러시아∙벨라루스 선수의 국제 대회 출전을 금지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올림픽 헌장 위반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지난 1월 “어떤 선수도 국적 때문에 출전이 금지돼선 안 된다”며 1년 만에 금지 권고를 뒤집었다. 이에 양국 선수들은 중립국 소속으로 국제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
국제 사회는 IOC의 결정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을 포함한 34개국은 성명을 통해 반대 의사를 표하며 결단을 재고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특히 영국은 IOC 후원사에 공개 서한을 보내며 IOC를 압박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거센 비판에도 IOC는 뜻을 공고히 했다. 이날 바흐 위원장은 “선수를 대회에서 배제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UN이 경고했다”라는 말을 덧붙이며 철회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
반면 러시아∙벨라루스 선수에 대한 세부적인 출전 제재는 강화했다.
IOC는 이날 회의에서 양국 선수들의 국제 대회 참가와 관련한 새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새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두 나라 선수는 중립국 소속 개인으로만 경기 참여가 가능하다. 기존과 달리 구기 종목 및 단체 경기에는 참가할 수 없게 된다. 유니폼 색상도 흰색 혹은 단색만 허용하는 것으로 강화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국 국기를 게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등의 조항도 추가됐다.
무엇보다 자국 군대와 연관된 선수는 출전 자체가 불가능하단 것이 이번 수정안의 골자다. 현역 군인 또는 군 산하 팀에 소속된 선수는 국제 대회에 참여할 수 없다.
해당 조항은 사실상 러시아∙벨라루스의 국제 대회 출전을 전면 제한하는 것과 다름 없다. AP통신이 러시아 국방부 발표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2020 도쿄올림픽 당시 러시아에서 메달을 획득한 선수 20명 이상이 현역 군인이다. 또한 전체 메달 71개 중 45개가 러시아군과 연계된 팀 소속 선수들이 따낸 것이다.
동시에 IOC는 러시아∙벨라루스 선수들의 파리올림픽 출전 가능 여부에 대한 결정도 뒤로 미뤘다. 바흐 위원장은 “이번 (개인 자격 출전 허용) 결정은 파리올림픽이나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참여와는 관계없다”며 “적절한 시기에 이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IOC의 의중과는 별개로 산하 종목 연맹의 결정에 따라 두 나라 선수의 출전이 제한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24일 두 나라 선수의 국제 대회 참가 금지 조치를 무기한 연장한 바 있다.
이번 조치는 러시아∙벨라루스 선수의 국제 대회 복귀에 대한 세간의 비판을 IOC가 일정 부분 수용한 결과다. IOC의 태도 변화에 양국 선수의 파리올림픽 출전 가능 여부는 다시 한번 불투명해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는 강화된 제재에 “IOC의 새로운 기준은 선수들이 대회에 뛸 수 없게 막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올림픽 헌장의 기본 원칙들이 파괴됐다”고 질타했다. 교전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벨라루스 선수의 파리올림픽 출전에 대한 결정 유예를 환영하면서도 여전히 보이콧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