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쉽고 재밌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한 편 보았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이 '장기자랑'이라는 연극을 준비하고 공연하는 과정을 담은 동명 다큐 영화 '장기자랑' 시사회에 다녀온 것이다. 4·16이나 노란리본 얘기만 듣고도 벌써 얼굴이 어두워지는 사람이 저기 보인다. 제발 그러지 말기 바란다. 이 영화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슬프거나 의무감을 강요하는 영화가 아니니까.
사실 나도 이 영화를 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영화사 측에서 이메일로 이 영화를 소개하며 시사회 참석 의사를 물어왔다. 평소에 내가 영화나 연극 리뷰를 자주 쓰는 걸 알고 있는 영화사 직원이 평소 내가 쓴 글들을 보여주며 리뷰어로 추천을 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남들보다 조금 먼저인 3월 23일 낮에 CGV용산에 가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작은 독립영화관이 아니라 시내 한복판에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시사회를 여는 것도 새로운 느낌과 방향으로 다가왔다. 아, 이 영화는 의무감으로 만든 기록물이 아니라 일반 극장에서 흥행을 노리는 영화구나.
세월호 참사로 아이들을 잃고 삶의 의미도 잃어가던 단원고 학부형들은 누가 지나가는 말로 꺼낸 '연극이나 해 보자, 재밌겠다'는 한 마디에 극단을 만들고 연극을 시작하게 된다. 물론 그분들도 연극을 열심히 해 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마침 안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연극 연출가 김태현이 달려와 "연극이란 게 그렇게 어렵거나 거창하기만 한 건 아니니 한번 해 보시죠"라고 꼬드기는 바람에 배우 엄마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웃기는 건 이 과정에서 보여 준 엄마들의 욕심과 시기, 질투가 장난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영화를 만들기 전 다른 프로젝트 건으로 인터뷰를 담기 위해 엄마들을 처음 만났던 이소현 감독은 만나자마자 속마음을 솔직하게 토로하는 이분들을 보고 "어머니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셨구나"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엄마들에겐 세월호 트라우마만 있는 게 아니라 동료들과의 갈등과 질투,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비난, 잘난 척 등도 대한민국 평균 수준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이소현 감독의 머릿속에 파란불이 켜졌다. 아, 이분들도 얼마 전까지는 일반인이었지! 그 간단한 발상의 전환이 그동안 우리에게 각인되었던 '전형적인 피해자' 프레임에서 벗어나 피가 돌고 웃음꽃과 눈물바람이 피어나는 진짜 살아 있는 엄마들을 찍을 자신감을 만들어낸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그동안 유가족들이 얼마나 많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서사만 일방적으로 다루었던 글이나 동영상에서 벗어나 '연극배우'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한 안산 단원고 학부형들의 발랄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객석에서 웃음과 눈물의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 웃음엔 혹시나 하는 조심성이 사라져서 좋았고 그 눈물엔 애틋함과 공감이 묻어 있어서 흐뭇했다. 해마다 4월이 되면 무거운 마음이 들었는데 올해부터는 달라질 것 같다. 세월호 참사를 이제 잊자는 얘기가 아니다. 기억하고 추모하되 보다 새로운 방법으로 기억을 환기하자는 것이다. '장기자랑'이라는 다큐멘터리는 그 예가 되기에 충분하다. 교복을 입고 무대에 선 엄마들의 모습은 슬프기보다는 귀엽고 웃겼다. 아마 국내 최초로 세월호 엄마들이 웃는 모습을 담은 영화일 것이다. 그리고 자식들의 옷을 입고 무대에 서는 배우들로 치면 아마 세계 최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