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임금이 '중간착취' 당하고 있다는 성토가 국회에서 울려 퍼졌다.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와 양대노총(한국노총·민주노총) 주최로 '간접고용노동 중간착취 제도 개선 토론회'가 열렸다. 사내하청·용역·파견·위탁 등 간접고용 노동자가 겪는 고질적 중간착취 문제를, 입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국회·학계·노동계가 모인 자리였다.
중간착취는 하청 구조에 널리 확산돼 있다. 2017년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가 숨진 '구의역 김군' 사건에서 원청 서울메트로가 김군이 속한 용역업체에 지급한 월평균 노무비는 240만 원이었으나, 김군이 실제 받은 월급은 144만 원 정도였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로 사망한 고(故) 김용균씨도 그랬다. 원청 한국서부발전이 하청에 준 인건비(직접노무비)는 월 522만 원이었으나, 김씨의 월급명세서에 찍힌 실 지급액은 220만 원대였다.
김성환 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인사말에서 이 두 사례를 언급하며 "피땀 흘린 노동의 대가를 빼앗는 중간착취 구조에 대한 개혁이 시급하다"며 "민주당은 사회에 만연한 중간착취를 뿌리 뽑고자 올 상반기 내 중간착취 방지법 입법을 목표로 내세웠다"고 밝혔다.
토론회 1부에서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취약한 실태를 고발하는 현장의 증언이 있었다. 열악한 근로 조건, 불안정한 지위, 고질적인 저임금 문제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원청이 하청업체에 지급한 인건비조차 중간 업체에 착복당해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거나, 일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필수 물품 지급에서부터 하청 노동자를 차별하는 사례들이다.
김성호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광주전남지부장은 여수 산단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 사례를 소개했다. 김 지부장은 "10년차 하청 노동자의 연봉은 원청 평균 임금(8,300만~8,800만 원)의 30% 수준에 불과하다"며 "최저임금이 오르면 상여금 600%에서 200%만 남기고 모두 기본급에 산입하는 식으로 회사가 대응해, 외견상 임금은 올랐어도 연소득은 되레 줄었다"고 지적했다.
하청 노동자에 대한 '일상적 차별'도 만연하다고 김 지부장은 목소리 높였다. 비를라카본코리아는 타이어 등에 들어가는 카본 미세분말을 만드는 회사로, 생산직 노동자들은 매일 유독한 까만 분진가루를 뒤집어 써가며 일하고 있다. 그런데 원청 노동자는 일회용 방진복을 제한 없이 쓸 수 있지만 하청 노동자는 매달 5개 지급이 전부라 "받은 걸 빨아서 다시 써야" 한다. 방진 마스크나 장갑도 원청 직원이 쓰다 버린 물품을 주워서 쓰고 있다고 한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사내하청 소속 노동자들의 저임금 실태에 대한 증언도 이어졌다.
박옥경 광양 지역 기계금속운수산업 위원장은 "지난 정부 당시 원하청 간 임금 불균형 해소를 위해 원청인 포스코와 45개 협력사 근로자·사용자 대표가 '상생협의회'를 만들어서 하청노동자 임금을 원청 대비 80%까지 올리기로 협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원청이 갱신계약에서 총 연봉을 10% 올려도 하청업체 별로 노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임금 인상 정도에서 격차가 나타났다고 박 위원장은 지적했다. 노조 없는 하청사들은 '퇴직충당금 적립도 해야 해서 다 못 올려준다'는 등 여러 핑계로 원청에서 받은 10% 인상분 중 5%, 7% 정도만 올려주는 식이라는 것이다.
저축은행중앙회의 콜센터 용역업체(하청) 변경 과정에서 해고된 이하나 씨는 "콜센터 노동자는 최저임금에 준하는 임금을 받는다"며 "힘없고 약한 사람은 참는 수밖에 없다는 건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바른생활 교과서에서 배웠는데 불혹의 나이에 당연한 이야기(고용승계)를 목이 터져라고 외쳐도 왜 바뀌는 게 없는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장경술 한국노총 전국연합일반노조 위원장은 "(생활쓰레기 수집·운반, 콜센터 등) 민간위탁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고용 불안 상태에 놓이는데, 이는 원청이 사용 사업자로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간접고용을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직고용'을 통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부에서는 '임금 중간착취' 문제 해법과 보다 근본적으로 '간접고용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갈래 해법이 제시됐다. 우선 '중간착취의 지옥도' 기획보도를 해온 본보 전혼잎 기자,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한국일보는 2021년부터 ‘중간착취의 지옥도’ 기획기사로 임금 중간착취 문제를 공론화해왔다. 또 국회에 입법 제안을 통해 현재 8개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원청이 노무비 전용 계좌를 사용해 하청 노동자에게 직접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거나, 파견업체는 정해진 수수료만 떼도록 해 부당한 중간착취를 막자는 내용 등이다.
현행법으로는 하청·아웃소싱 회사는 하청 노동자에게 최저임금만 지급하면 되기 때문에, 원하청 계약 과정에서 책정한 '직접 노무비'(인건비)를 떼먹어도 제재할 방도가 없다.
발제에 나선 전혼잎 기자는 "파견과 용역은 사실 원청 지휘감독을 받느냐, 아니냐로 차이를 두기 때문에 계약의 구조는 다르지가 않다"며 "파견직도 파견 수수료의 상한을 정하기보다, 파견계약에서 정한 임금을 모두 주는 방식으로 하는 게 부작용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제안했다.
이어 파견 수수료 등을 투명하게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알리도록 하는 방안은 조직력, 교섭력이 미약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책임만 떠넘기고 실효성 있는 결과로 이어지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를 덧붙였다. 차라리 원하청 계약 과정에서 정한 인건비라도 온전히 노동자 몫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취지다.
발의된 법안들에 대해 문성덕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는 "원청이 인건비로 책정한 금액은 온전히 노동자들에 지급될 수 있도록 '임금 전용계좌'를 도입한 방안 등을 담은 법안들에 대한 논의를 곧바로 시작해야 한다"고 토론문에서 밝혔다.
엄진령 노무사(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는 "(원청이 하청노동자에게) 임금을 직접 지급하도록 하는 방안은 하청업체가 임금을 떼먹거나 계약시 산정된 것보다 노동비 규모를 축소해 착취분을 늘리는 건 방지할 수는 있겠지만, 애초 (원청에 의해서) 깎여나가는 최초의 금액에 대한 대응은 빈 지점으로 남게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토론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것은, 간접고용이 만연한 현실 속에서 중간착취로 임금이 착복되는 것도 방지할 필요성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간접고용 자체를 규제하고 가급적 직고용을 하게끔 하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권오성 교수는 임금 중간착취의 근본 원인인 '간접 고용' 자체를 강력 규제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법안으로 발의된 파견수수료 명시나 인건비 구분지급이 당연히 있으면 더 좋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하청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불법파견에 대한 엄격한 법 집행이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중간착취, 나아가 간접고용 문제 해법으로 ①전문적 영역에서만 노무도급(아웃소싱)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도록 하고 ②파견 근로자에겐 최저임금을 1.3배 높여 적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하청을 통해 간접고용을 하는 경우,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하게끔 해서 가급적 직고용을 하도록 (원청 사용자를) 유도해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토론에 나선 정기호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는 "동종·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과 그 수준이 같도록 강제하거나, 동종·유사한 정규직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엔 직접 고용한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최저 임금수준을 하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그 차액에 대해서는 원청 사용자에게 직접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고 제안했다.
문성덕 변호사는 "예외적으로 간접고용을 허용한다는 파견법 본래의 입법 취지만이라도 살릴 수 있도록 상시·지속적 업무에 대한 파견근로 금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원내 다수당인 민주당이 핵심 입법과제로 내건 주제인 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다. 김성환 의장 외에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 전해철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김영진 환노위 민주당 간사,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강석윤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이 인사말과 축사 등으로 참여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축사에서 "불분명한 법적 지위, 차별적인 처우, 고용의 불안정은 간접고용이라는 틀 속에서 쉽게 풀지 못하는 난제"라며 "의미있는 해법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했다. 전해철 위원장도 "2018년 고용노동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파견·용역 노동자의 평균 월급은 정규직의 59.7%에 불과하다"며 "힘들게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가야할 임금이 중간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진 간사는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중간착취 방지를 위한) 개정안에 깊은 고민을 할 때"라며 "심도 있게 연구하여 국회에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데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