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안고 뛰어내린 막내만 살았다... '빌라 화재' 나이지리아 남매 4명 참변

입력
2023.03.27 17:45
2면
아빠는 옆집에서 물 받아 불끄려다 진화 실패
2년 전 살던 집에서도 전기적 요인 화재 피해
부부, 10여 년 전 입국 한국서 아이 낳아 키워
"출입문 쪽 거실 멀티탭서 불난 것으로 추정"

경기 안산시 단원구 빌라에 거주하던 나이지리아 국적 A씨의 집에서 불이 나 A씨 자녀 4명이 숨졌다. A씨 가족은 2년 전에도 거주하던 집에서 화재가 발생해 이번에 숨진 둘째 아이가 부상을 입어 이곳으로 이사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3시 28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3층짜리 빌라 2층에서 불이 났다. 출동한 소방대에 의해 40여 분 만에 불은 진화됐지만 A씨의 11세 딸, 7세 아들, 6세 아들, 4세 딸 등 남매 4명이 숨졌다. 숨진 아이들은 안방에서 누운 채 발견됐으며, 특별한 외상은 없어, 연기에 질식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화재 당시 집에는 숨진 아이들 4명과 부모, 두 살짜리 막내 딸 등 7명이 있었다. 막내는 엄마가 안고 창문을 통해 뛰어내려 화를 면했다. 빌라는 3층 건물이지만 반지하층부터 1층으로 간주해 A씨의 집은 사실상 1.5층 높이였다. A씨는 불이 나자 옆집으로 달려가 물을 받아 끄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자 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빌라 건물에 살던 다른 나이지리아인 3명과 우즈베키스탄인 2명, 러시아인 1명 등 6명이 연기를 흡입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37명은 자력으로 대피했다.

경찰과 안산시 등에 따르면 A씨는 2008년에, 아내 B씨는 2012년에 각각 입국해 무역경영 비자(D9)를 발급받아 갱신하면서 아이들을 한국에서 낳아 길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고물을 수집해 고친 뒤 쓸 만한 물건을 나이지리아에 수출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오전 8시 50분부터 소방과 합동감식에 나선 경찰은 현관 출입문 옆 냉장고와 TV를 연결한 멀티탭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여운철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장은 “출입문 입구 거실 바닥에서 최초 불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은 전기적 요인으로 화재가 발생했는지 조사 중이다.

경찰은 “현관 출입문과 안방이 바로 인접해 있어 아이들이 미처 대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아이들이 탈출을 시도했는지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해 정확한 사인을 조사할 계획이다.

A씨 가족은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 거주하던 2021년 1월 초에도 화재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화재는 이들이 살던 지하 1층 거실 소파 부근 벽면 스위치에서 전기적 요인으로 발생해, 이번에 숨진 둘째 아들(당시 4세)이 목과 등에 2도 화상을 입었다.


임명수 기자
김소희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