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을 비집고 나온 개나리

입력
2023.03.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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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도 남쪽에서 불어오는 꽃바람은 막을 수 없는가 보다. 지금 대지는 매화를 비롯해 산수유, 벚꽃까지 전국이 꽃물결을 이루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에도 벚꽃이 1922년 관측 이래 두 번째로 빠르게 개화했다. 원래 꽃들도 피어나는 순서가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봄꽃은 진달래, 개나리, 벚꽃 순으로 피는 게 보통이지만 요즘은 순서에 상관없이 일제히 피어나 느긋이 봄꽃을 감상할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

중국발 황사가 지나가고 기분 좋은 상쾌한 바람이 부는 주말,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하늘공원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찾았다. 하늘을 가린 커다란 나무들은 아직 봄기운을 느끼지 못해서인지 새싹도 피우지 못한 채 한겨울 속에 갇혀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주변을 살피던 중 양지바른 곳에서 피어난 개나리꽃을 발견했다. 갓 태어난 병아리의 솜털처럼 화사하고 밝은 노란색이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났다. 무채색의 메타세쿼이아 나무 사이로 살짝 삐져나온 개나리는 흑백영화 화면에 인위적으로 색깔을 덧칠한 듯 이질적 느낌이 든다. 세상이 궁금한 듯 살짝 얼굴을 내민 모습은 봄나들이를 떠나는 수줍음 많은 봄 처녀를 닮았다.

진해 군항제를 비롯해 전국의 유명한 꽃 축제장에는 3년 만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있다. 대부분 코로나로 인해 그동안 만끽하지 못한 봄의 향기를 향유하고 싶어 그곳을 찾았을 것이다. 때마침 우리 집 창가에도 반가운 벚꽃이 피었다. 멀리 갈 수 없다면 가까운 공원이나 가로수 길을 걸어보자. 몰래 피어난 봄꽃이 마음을 설레게 할 수도 있으니까.



왕태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