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지명직 최고위원과 정책위의장 등 당직에 비이재명계 의원을 임명하는 중폭의 인사 개편을 단행했다. 지난달 27일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무더기 이탈표로 표출된 내홍을 수습하는 한편,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관심을 모았던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직인 사무총장은 교체하지 않았다. 비명계 요구를 일부 받아들이되 공천권만큼은 양보하기 어렵다는 이 대표의 의지로 풀이된다. 이런 '절충적 인사'에 사무총장 교체나 이 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 직후 브리핑에서 이 같은 당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 대표는 회의에서 당직 개편 기조와 관련해 “통합과 탕평, 안정에 중점을 뒀다”고 언급했다고 박 대변인은 전했다.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호남(광주 서갑) 출신의 재선 송갑석 의원이 지명됐다. 다만 지명직 최고위원 인선은 다른 당직과 달리 당무위원회 비준을 거쳐야 한다. 송 의원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 출신으로 비명계로 분류된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 선출직 최고위원으로 출마했던 송 의원은 친이재명계 후보들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송 의원은 비명계 의원 모임인 '민주당의 길'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책위의장에는 3선 김민석 의원이 임명됐다. 김 의원은 86그룹 출신의 전략통으로 계파색은 옅은 편이다. 다만 김 의원은 최근 이 대표에 대한 영장이 다시 청구될 경우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이탈표 단속을 위해 표결 보이콧에 나서자고 주장하는 등 친명계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정책위 수석부의장에는 친정세균(SK)계 재선 김성주 의원이 임명됐다.
전략기획위원장에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재선 한병도 의원이 임명됐다. 디지털전략사무부총장에는 김근태(GT)계 초선 박상혁 의원이 임명됐다. 이날 인사로 친명계 핵심인 '7인회' 소속인 김병욱 정책위 수석부의장과 문진석 전략기획위원장, 김남국 디지털 전략사무부총장은 당직에서 물러났다.
수석대변인에는 문재인 정부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내는 등 친문계 색채가 짙은 재선 권칠승 의원이 임명됐다. 초선 강선우 의원도 대변인으로 합류했다.
기존 대변인 중 초선 김의겸, 임오경 대변인과 원외 김현정, 황명선 대변인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박성준, 한민수 대변인은 유임됐다.
한편 공천 실무와 당의 살림을 담당하는 핵심 당직인 조정식 사무총장과 김병기 수석사무부총장, 이해식 조직사무부총장은 전원 유임됐다. 앞서 비명계는 사무총장 교체를 포함한 인적 쇄신을 요구했지만 이 대표의 응답은 절반에 그친 셈이다. 박 대변인은 “내년 총선을 위한 살림살이를 꾸리는 자리여서 안정에 방점을 찍었다”며 “5선 의원으로서 일을 잘하고 안정을 추구하기 위한 적임자라는 평가가 많다”고 유임 배경을 설명했다.
당직 개편을 두고 당내에선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한 지도부 핵심 인사는 "굳이 등 떠밀려 인사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있었는데 이 대표가 어려운 결단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비명계에선 한계가 있다는 반응이 많다. 한 초선 의원은 "이 대표 사법 리스크와 강성 지지층 의존이라는 문제의 본질이 해결된 것은 아니어서 쇄신의 끝이 아닌 시작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비명계 5선 중진 이상민 의원은 본보 통화에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때문에 당이 골병들고 있는 현 상황을 해결하려면 이 대표 본인의 거취 정리가 필요하다"며 "그 밖에 (당직 개편 등) 이것저것을 하는 것은 보여주기식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이 대표는 최고위 직후 취재진과 만나 '큰 폭의 당직 개편을 요구하는 의원들이 만족할 만한 결과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당직(개편)을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