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미래사회를 만들어가는 핵심 기술로 인식되고 미중 반도체 갈등이 심화되면서 반도체는 경제안보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현재 미국 반도체과학법, 중국 집적회로 및 소프트웨어산업 고품질 발전 정책, 일본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 유럽연합(EU) 반도체법안, 한국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 등을 통해 각 국가들은 앞다투어 반도체 지원 정책을 마련해 실행하고 있다. 정부가 마련한 보조금 및 세액공제 등 각종 지원들이 실제 반도체 산업 발전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대학이 협력하고 조정하면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반도체와 같이 기업 주도로 첨단기술 발전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특히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논의돼야 한다.
1980년대 일본에 밀리기 시작한 미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주도의 반도체 연구 컨소시엄 세마테크를 조성해 운영했고 14개 미국 기업들과 대학 및 연구소들이 참여했다. 1987년에서 1996년 처음 10년 동안 정부가 전체 예산의 절반을 담당하며 주로 상품화되기 이전 기술의 공동연구 개발에 초점을 맞추었다. 미국 정부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기업들을 한데 불러 모아 공동연구 시작을 위한 장을 만들며 예산을 지원했고 세마테크는 미국 반도체 산업의 생태계를 견고하게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벨기에의 비영리 반도체연구센터 IMEC의 경우도 1984년에 시작해 현재까지 유지되는 데 플랑드르 지방정부, 벨기에 정부, EU의 역할이 중요했다. 이들은 전체 예산의 20%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는 ASML, TSMC, 인텔, 삼성과 같은 대기업뿐 아니라 600여 개 이상의 소부장기업 및 대학들도 참여하고 있으며 세계 첨단 반도체 지식 생산과 활용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협회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반도체 부문에 미국 정부가 약 520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한 후 기업들의 총 투자 약정금액이 2,000억 달러를 넘고 있어 정부 투자의 효과가 연쇄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곧 설립될 미국 국립반도체기술센터를 통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기업들을 모으고 협력하는 플랫폼을 만들어 갈 것으로 보인다.
첨단기술 부문에서 정부는 세액공제를 통해 투자를 활성화시키고, 예산 지원 등을 통해 관련 분야 기업들을 함께 모아 협력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이뤄내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주요국 정책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이 정책들이 국내 기업 및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모니터링하면서 정보를 제공하고 협상하는 것도 정부 역할이다. 경제안보를 위한 인텔리전스와 협상 역시 정부가 수행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또 세계의 우수 첨단기업들을 국내에 유치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싱가포르 경제발전국(EDB)의 경우 세계 첨단기술 발전 현황을 분석하고 자국 경제성장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외국 기업이 있으면 실적 기술 재무 내부 인간관계 정보까지 모아 유치 계획을 짜고 협상을 시작한다. 현재 마이크론, 글로벌파운드리, UMC, 유럽의 ST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 등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싱가포르에 유치돼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세액공제 및 연구개발 지원 이외 경제안보 인텔리전스와 협상 및 해외 첨단기업 유치 등에서 보다 적극적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