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출생아가 2만3,000여 명으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은 수를 기록하는 등 저출생 현상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직장인 두 명 중 한 명은 여전히 육아휴직, 출산휴가 등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육아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직장으로 돌아오면 '민폐' 취급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직장갑질119가 사무금융우분투재단과 이달 3~10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26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에서 자유롭게 출산휴가(출산전후휴가)를 사용할 수 없다는 응답은 39.6%,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응답은 45.2%였다. 응답자 특성별로 보면 비정규직·5인 미만 사업장·월 150만 원 미만 노동자 등 노동 시장 내 약자(60% 안팎), 연령별로는 20대(45.5~48.9%)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휴가 사용이 어려웠다.
쉴 수 있다고 해도 직장에 복귀한 뒤 눈총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임신으로 출산전후 휴가를 1달 사용한 직장인 A씨는 "업무에 복귀하니, 다른 업무를 시키다가 생산공장 출장을 지시했다'며 "임산부라 장거리 출장이 어렵다고 하니, 생산공장으로 인사명령을 냈다. 육아휴직을 신청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육아휴직 복직자 B씨도 "급여가 깎이고, 6개월째 특별한 보직 없이 다니고 있다"고 토로했다.
도입한 지 40년 가까이 되는 육아휴직도 사용이 어렵다 보니, 비교적 최근 생긴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임신 12주 이내 혹은 36주 이후 하루 2시간 단축 근무)는 언감생심이다. 2020년 고용노동부의 일가정양립실태조사 결과 이 제도 활용률은 6.9%였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만 8세 이하 자녀 둔 부모가 주당 최대 35시간 근무)도 활용률이 6.4%에 그쳤다. C씨는 "임신 초기 단축근무를 요청하니 직장 상사가 '임신 후기에 단축근무한 다른 직원은 늦게 귀한 애를 가져서 쓰게 한 것'이라고 반려했다"면서 "내 뱃속 아이도 귀한 아이인데,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나 싶었다"고 했다.
직장갑질119는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상황에서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확대하는 근로시간 개편안은 저출생 현상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직장갑질119는 "정부는 '워킹맘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고 아이를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주 60시간만 일해도 주 5일 내내 밤 11시에 퇴근해야 한다"면서 "아이를 맡길 조부모가 있거나 부자가 아니라면 회사를 그만두거나 아이를 낳지 않거나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장종수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출산휴가, 육아휴직처럼 일·생활 균형의 기본인 법정 제도 사용마저 눈치 볼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과연 노동자가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직장인이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있게끔 노동시간을 줄이고, 출산·육아·돌봄휴가 사용을 제한하는 사업주를 처벌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