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열'이면, 눈은 그중 '아홉'이라고 한다. '눈'에 관한 표현은 몸의 한 부분을 넘어 곧 사람을 뜻할 때가 많다. '눈이 좋다'는 보고 판단하는 힘이 뛰어난 것이며, '눈을 뜨다'는 옳고 그름을 깨닫는 것이다. '눈에 들다, 눈에 어리다, 눈에 밟히다, 눈을 끌다, 눈이 높다' 등 눈이 하는 행위 하나하나는 곧 가치관을 알려준다. 또한, '눈이 맑다, 눈을 흘긴다'처럼 맑거나 불편한 마음 상태를 드러낸다. 나아가 세상을 외면하거나 생을 마감하는 순간을 '눈을 감다'라고 한다.
이제 눈을 좀 더 가까이서 보자. '눈시울'이 보인다. 시울이란 약간 휘어 있는 부분의 가장자리인데, 눈시울, 입시울, 활시울, 뱃시울, 맨드라미 꽃시울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된 모양이 그것이다. 그런데 '눈시울이 뜨거워지다'라고 하면 모양만이 아니라 당사자의 벅찬 감정을 싣고 있다. 그리고 '눈초리'가 있다. 초리는 가늘고 뾰족한 끝부분으로, '회초리' 및 전남과 제주도에 남은 '촐리'에 미루어 볼 때 꼬리란 말이다. '눈꼬리'는 눈의 가장자리를 가리키지만, '호기심에 찬 눈초리', '의심의 눈초리'에서 보듯 '눈초리'는 눈에 담긴 표정을 말한다. 또 '눈썰미가 좋다'고 할 때 '눈썰미'는 한 번 본 것은 잊지 않고 무슨 일이든 금방 배우는 재주이다. 눈이란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를 배우는 통로였음을 되새긴다.
한국 사회는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꺼리는 편이다. 윗사람의 눈을 빤히 바라보는 것이 낯설고, 설혹 꾸중이라도 듣는다면 고개를 숙여 낮은 곳을 응시하고 있어야 한다. 면접시험을 보는 수험자가 늘 고민하는 것이 바로 이 시선이다. 오죽하면 인중 정도를 보면서 웃고 있으라며 지도할까? 눈에 대한 관용표현이 손, 발 등 다른 신체어에 비해 다소 적은 까닭은 한국 문화에 있다.
아프리카 보츠와나 지역에서 발표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그 지역 주민들은 소를 방목하며 기르는데, 맹수가 종종 소를 잡아먹어 고민이었다. 맹수의 공격적 습성을 파악한 이들이 소의 엉덩이에 눈 한 쌍을 또렷하게 그려 넣었는데, 그 소들은 모두 살아남았다고 한다. 요즘 뒤쪽에 눈을 그리고 운행하는 차들이 부쩍 늘었다. 특히 '그림 눈'은 몸체가 높은 트럭 뒷면에 많이 그려져 있다. 뒤따르는 운전자에게 맹수처럼 공격하지 말라는 신호인가 보다. 설령 트럭 철판의 가짜 눈일지라도, '눈'은 그것을 바라보는 이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