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한 고등학교와 주거용 건물 등에 22일(현지시간) 공습을 단행했다. 이로 인해 최소 9명이 숨지는 등 약 50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날 정상회담에서 ‘평화적 해법’을 다짐한 지 하루 만에 또다시 러시아 측이 민간인 피해를 무릅쓰고 우크라이나 공격에 나선 것이다.
로이터·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새벽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에 위치한 소도시 르지시우의 한 고등학교가 러시아 무인기(드론)의 공격을 받았다. 학교 기숙사 건물 2동과 교사 1동이 일부 무너졌고, 최소 8명이 사망했다. 부상자도 7명이 나왔다. 로이터통신은 “5층 건물인 기숙사는 (폭격으로) 지붕에 큰 구멍이 뚫렸다”고 전했다. 폭격 이후 화재가 발생했으며, 무너진 건물 잔해 밑에 최소 4명이 깔린 것으로 추정돼 사상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드론 폭격 몇 시간 후인 이날 오전,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에도 러시아 미사일이 떨어졌다. 9층짜리 주거용 건물 2동이 파손돼 한 명이 숨졌으며, 33명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현재까지 사상자는 최소 49명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공격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 주석과 논했던 ‘평화’가 24시간도 못 갔음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 주석은 20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러시아 모스크바를 국빈 방문했다. 중러 정상은 21일 공식 회담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해결을 위해 평화회담 개최가 필요하다” “(중국이) 두 나라의 중재자가 되겠다” 등의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도 러시아군은 시 주석이 22일 오전 일정을 마치고 출국하기 직전(르지시우 고교)과 직후(자포리자 주거 건물)에 각각 공습을 재개한 것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평화’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다른 한편에선 범죄와 다름없는 공습 지시가 내려온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포리자의 아파트가 폭발하는 영상을 트위터에 공개하기도 했다.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해 말 이후 처음으로 격전지인 바흐무트 인근 부대를 찾아 병사들을 격려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에 위치한 바흐무트에서는 8개월째 러시아군의 공격과 우크라이나군의 방어가 이어지며 수많은 전사자가 나오고 있다.
이번 방문은 특히 중러 정상회담 종료 직후,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추가 지원 약속이 겹치는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회담 이후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에서 균형추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며 “한편으로 우크라이나는 156억 달러(약 20조4,000억 원) 규모의 국제통화기금(IMF) 차관을 확보하는 등 동맹국들로부터 더 신속한 지원을 약속받았다”고 설명했다. 향후 전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최대 격전지의 우크라이나군 사기를 끌어올리려는 게 젤렌스키 대통령의 의도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바흐무트에서 우위를 점해 온 러시아 전력이 한계에 달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영국 국방부는 이날 “바흐무트에 주둔하던 러시아 부대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며 “러시아군이 추진력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최근까지 젤렌스키 대통령이 바흐무트 사수 의지를 거듭 드러낸 가운데, 러시아군 공세를 ‘일단’ 견뎌내면 판도가 바뀔 수도 있다는 뜻이다.